12.2.23
북한과 미국이 오늘 중국 베이징에서 다시 무릎을 맞댄다. 형식적으로는 반년 전부터 대북 영양지원과 비핵화 사전조치 이행을 논의해온 회담의 연속이지만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 처음 열린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회담 의제는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힌 상태다. 대북 영양지원의 규모를 둘러싸고 북한의 요구와 미국의 제안 사이에 6만t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북한은 김정일 위원장의 100일 탈상 군중대회와 4·15 강성대국 선포 등 굵직한 정치행사들을 앞두고 명분과 실리를 챙기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으로선 ‘김정은의 북한’을 탐색하면서 머지않은 시기에 북핵 6자회담을 재개해 북한을 계속 관리해나갈 수 있을지 점검하는 기회로 삼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될 것이다.
양측이 서로 어떤 자세로 임하느냐에 따라 올 한해 한반도 정세의 풍향이 달라질 수 있다. 북한은 지난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속개된 북·미 고위급회담에서 영변 핵시설 동결과 경수로 제공이라는 평화의 빅딜을 이뤄냈다. 이번 회담에서도 북·미 관계를 재설정하고 핵프로그램과 평화의 빅딜을 이룰 최소한의 토대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북측이 김정일 위원장의 애도기간이 끝나자마자 국방위원회 성명을 통해 이명박 정부와는 상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놓고 남북관계를 막다른 길로 끌고가는 것은 북·미관계 개선을 통한 활로 모색이라는 북한의 전략적 목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측의 이산가족 상봉 제안을 무시하고 해병대 사격훈련을 빌미로 ‘무자비한 대응’을 운운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와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대북정책에 관한 한 상당부분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 미국과 마주앉아도 한국을 만나고, 한국과 마주앉아도 미국을 만나는 셈이다. 북측의 호전적인 책동은 남측은 물론 미국 여론의 악화로 이어져 오바마 정부 내 대북협상파의 입지를 줄인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북한 핵문제는 한반도 문제를 풀어갈 가장 중요한 단서다. 오바마 정부는 상황관리에만 치중하겠다는 미시적인 입장을 정리할 때가 됐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을 북한 급변사태와 동일시하면서 수많은 시나리오를 써왔던 최근 몇년간의 접근방식도 오류였음이 입증된 터다. 싸우건, 대화하건 상대의 눈을 똑바로 봐야 한다. 적극적 상대(engagement) 정책으로 북·미 양자회담은 물론 6자회담을 제 궤도에 올려놓는 출발점으로 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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