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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여적

아웅산 영묘

by gino's 2012. 5. 16.

김진호 논설위원

 

 


버마의 해방공간 역시 심각한 좌우갈등과 유혈로 얼룩졌다. 우리에게 아웅산 국립묘지로 알려진 버마 양곤의 ‘순교자들의 영묘’는 아웅산 임시정부 총리를 비롯해 한날 한시에 피살된 버마 독립운동지도자 7명의 넋이 머무는 곳이다. 독립을 다섯 달 남짓 남긴 1947년 7월19일 오전 10시37분의 일이다. 버마를 방문한 외국 지도자들은 이를 기려 오전 중 영묘를 참배하는 관례가 생겼다.

 

이곳이 우리에게 비극의 장소로 각인된 것은 1983년 10월9일 오전 10시28분, 전두환 대통령을 수행해 버마를 방문 중이던 서석준 부총리와 이범석 외무부 장관 등 17명이 폭사하면서부터다. 3인의 북한 특공대가 자행한 폭탄테러였다. 버마는 이 사건을 계기로 두 개의 코리아와 멀어졌다가 최근에야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아직 ‘무늬만 민주화’라는 조심스러운 평가를 받고 있지만 군부독재의 오랜 연대기를 끝내고 민정실험을 하는 버마를 이명박 대통령이 찾았다. 한국 대통령으론 29년 만의 방문이다. 어제 영묘도 참배했다. 이 대통령이 테인 세인 대통령과 지난달 정계에 복귀한 아웅산의 딸 수치를 만나 경협 강화와 버마 민주화 지원을 다짐한 것은 외교사적 사건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아웅산 수치 여사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l 출처:AP연합뉴스/경향DB

 

버마는 새로운 역사로 나아가지만 한반도 분단사는 되레 뒷걸음질치고 있다. 이번 방문에 즈음해 한반도 안보기상도가 다시 험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군복을 벗고 사복으로 갈아입은 세인 대통령은 북한과의 무기거래 중단 약속을 재확인했다. 우리로서는 2009년 취임 이후 중국 견제를 위해 줄곧 버마에 공을 들였던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노력에 숟가락을 얹은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버마·북한 간의 불투명한 무기거래가 중단된다면 반길 일이다. 세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에게 이미 같은 약속을 한 바 있다.

 

한·버마 관계는 분단외교의 수준을 넘고 있다. 한국은 지난해 중국과 홍콩, 태국에 이어 버마에 4번째(26억달러)로 많은 투자를 했다. 다만 공적개발원조(ODA)의 모자를 쓰고 환경과 인권을 파괴한다는 국제적 비난을 받았던 에너지 부문의 비중이 크다. 한국 대통령의 평화적인 영묘 참배에 29년이 걸렸다. 모처럼 다시 여는 두 나라 관계에 경제적 잇속만 앞세우는 단견이 적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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