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논설위원
쿠바 난민들의 미국 이주사 역시 냉전시대의 단면을 보여준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의 공산혁명 이후 주로 백인 중·상류층 수십만명이 삶의 터전을 미국으로 옮겼다. 혁명 1년 뒤에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피터팬 작전’으로 1만4000명의 아이가 마이애미로 공수되기도 했다. “카스트로가 아이들이 5살이 되면, 부모로부터 떼어내 군사학교나 수용소로 보낸다더라”는 근거없는 소문에 놀란 부모들이 아이들이라도 먼저 미국으로 보내려 했기 때문이다.
쿠바계 난민들은 그러나 미국 내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성공한 이민집단의 하나로 성장했다. 플로리다주 마이애미(85만여명)와 뉴욕·뉴저지주(14만여명)에 몰려 살면서 현재 6명의 미국 연방 상·하원 의원을 배출하고 있다. 플로리다는 대통령 선거 때마다 공화당과 민주당 후보를 갈마들며 지지하는 대표적인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로 이곳의 쿠바계 표는 어느 정당도 무시 못한다.
이러한 배경을 업고 쿠바계 로비단체 미국·쿠바 민주주의 정치행동위원회(PAC)는 유대계의 미국·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에 이어 막강한 로비력을 발휘하고 있다.
문제는 쿠바계 미국인의 상당수가 카스트로에 대한 맹목적 증오심에서 평화보다는 싸움을, 화해와 협력보다는 극단적인 대치를 선택한다는 점이다. CIA 지원하에 카스트로 체제의 군사적 전복을 꾀하며 피그만에 상륙했던 것도 이들이었고, 수많은 반(反)카스트로 테러 및 암살 기도에도 선봉에 섰다. 쿠바의 자유와 인권을 옹호하지만, 많은 경우 적개심과 증오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미국 내에서 한반도 사안에 상당한 영향력을 휘두르는 일레아나 로스레티넨 하원 외교위원장 역시 쿠바 난민 출신이다. 한때 카스트로 암살을 공개 지지해 설화를 빚은 인물이다. 2008년 북한인권법 제정을 주도한 이후 쿠바뿐 아니라 북한의 자유와 인권에도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 그가 한국을 찾아 어제 비무장지대를 방문하고 서울 중국대사관 앞에서 탈북자 송환 금지를 촉구했다고 한다. 자유도, 인권도 좋지만 맹목적 증오만은 옮기지 않았으면 한다. ‘인권위원장’이 아닌 하원 외교위원장이기 때문이다. 감정적 반북보다는 균형 잡힌 대북외교의 항해사 역할을 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