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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여적

유로존

by gino's 2012. 5. 20.

김진호 논설위원

 


그리스의 문화에 로마의 영토를 결합한 제국. 1000년 동안 유럽인들이 꾸어온 꿈이다. 유럽통합의 밑그림을 그린 프랑스 외무장관 로베르 슈망은 오랜 꿈을 실현시킬 설계도를 제공했다. 슈망은 1949년 5월 스트라스부르 연설에서 단테와 에라스무스, 루소, 칸트, 프루동 등의 담대한 정신이 통합의 추상적인 틀을 제시했다면서 전쟁을 딛고 영속적인 평화를 보장하는 초국적 공동체의 출범을 설파했다.

 

유로화는 상징에서부터 그리스와 유럽의 만남을 형상화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공식설명에 따르면 유로화 상징()은 유럽문명의 요람인 그리스에서 비롯됐다. 희랍어 5번째 알파벳인 엡실론(ε)이자 ‘유럽’의 첫 알파벳(E)에 유로화의 안정을 강조하기 위해 짧은 평행선을 그었다는 의미다. 옹골찬 해몽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은 그 꿈이 뿌리를 내린 영토다.

 

유로화 동전과 1달러 지폐ㅣ 출처:경향DB

유로존 건설에는 영·미 앵글로색슨 금융자본이 그려놓은 세계화의 구도 속에서 튼실한 단일화폐의 시장을 지으려는 염원이 담겨 있기도 하다. 3억3200만명의 유럽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지난 2월 현재 전 세계에서 8900억유로(1321조원)가 유통되면서 세계 제2의 화폐가 됐다. 화폐영토를 넓혀 언젠가 미국 달러화를 누르겠다는 야망은 그러나 미국발 금융위기로 금가기 시작했다.

 

그 유로존이 그리스의 탈퇴 가능성 때문에 흔들리고 있다. 2009년부터 시작된 가입국들의 재정위기가 끝간 데 없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고가 텅 빈 정부도, 주머니가 텅 빈 개인도 파산의 벼랑 끝에 놓여 있다. 계속 긴축해야 한다는 갑론(甲論)과 재정을 풀어 성장부터 해야 한다는 을박(乙駁)이 맞서는 형국이 유로화 상징 속의 평행선을 연상시킨다.

 

통합유럽의 문명적 시원(始原)에서 ‘공공의 적’으로 변한 그리스는 국가적인 수모마저 겪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다음달 그리스 총선에서 유로존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하라고 제안해 그리스 국민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지난주 말 열린 반 자본주의 시위에 참가한 2만여명은 “유로존은 파멸했다”고 사망선고를 내렸다고 한다. 유로존도, 세계화도 어디에서부터인가 단단히 잘못됐다. 슈망을 비롯한 유럽통합의 아버지들이 지하에서 통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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