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테러 6년 ,한반도 |
[경향신문]|2007-09-17|30면 |45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1532자 |
아마도 북한이 가장 미국에 친근하게 손을 내민 순간은 9.11테러 다음날일 것 같다. 북한 외무성은 신속하게 테러공격을 비난하고 "매우 비극적인 그 사건은 테러리즘의 위험성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 뒤에 '놈'자를 붙여야 직성이 풀리는 듯 미국을 철천지 원수로 여겼던 북한으로선 이례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유엔 회원국으로서 모든 형태의 테러, 그리고 테러에 대한 어떤 지원도 반대하며 이러한 입장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다짐했다. 9.11은 세계를 미국 편으로 만들었다. 역대 미 행정부가 '공공의 적'으로 사갈시했던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은 "이를 계기로 국제사회에서 테러를 추방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면서 인도적 지원을 제안했다. '깡패국가'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대령은 "비록 미국과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지만 인도적 차원에서 미국을 도와야 한다"고 거들었다. 세계를 제패한 미국 경제.군사력의 심장부에 비행기 폭탄을 꽂은 알카에다의 지도자 빈 라덴은 바야흐로 외톨이가 될 상황이었다. 하지만 상처받은 거인은 세계를 엉뚱한 방향으로 몰아넣었다.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십자군 전쟁'으로 격상시켰다. 2002년을 '전쟁의 해'로 선포하더니 기어코 9.11과 별 상관이 없던 이라크를 침공했다. 맨해튼 상공을 뒤덮었던 검은 연기는 한반도에까지 그림자를 드리웠다.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이 장악한 부시 행정부에 북한은 결코 테러와의 전쟁의 동반자가 될 수 없었다. 되레 그 반대였다. 북한 외무성은 9.11테러 두달 뒤 '테러자금 조달 억제에 관한 국제협약'과 '인질억류 방지에 관한 국제협약'에 가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테러자금과 인질 문제는 이후 미.일 강경파가 북한을 몰아세우는 빌미가 됐다.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의 북한 계좌가 동결됐고 일본인 피랍자 문제는 독재국가 북한을 더욱 몰아세웠다. 그로부터 6년, '부시의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지만 끝이 멀지 않은 듯하다. 테러리즘과의 전쟁은 계속될지 몰라도 얼마 남지 않은 부시 대통령의 임기와 함께 이라크 전쟁은 성격을 달리하게 될 공산이 크다. 미국이 '9.11 이전'으로 되돌아가면서 한반도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악의 축'으로 지목됐던 북한과 미국이 무릎을 맞대는 장면이 낯설지 않게 됐다. 북한과는 "대화는 해도 협상은 하지 않겠다"던 미국이 먼저 '폭정의 전초기지'의 '독재자'에게 선택을 제안하고 있다. 세계를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섬뜩하게 갈랐던 미국의 네오콘은 재야인사가 됐다. 일본인 납치문제로 권좌에 등극했던 아베 신조 총리도 실각했다. 일본 극우는 이제 6자회담에서건, 미국의 동아시아 구상에서건 걸림돌이 된 양상이다. 좋든, 싫든 세계는 미국이 주도한다. 한국의 보수 우익은 종종 변화를 놓친다. 6년 만에 간신히 찾아든 평화 분위기를 과거의 잣대로 재단하다가는 기껏 아베나 네오콘 짝이 된다. 9.11테러가 한반도에 시사하는 것은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아프간 한인 피랍극과 한 여교수의 '알몸 사진' 정도로는 흐려질 수 없는 실체다. 김진호 특파원 |
<워싱턴에서> 9.11테러 6년 ,한반도 |
[경향신문]|2007-09-17|30면 |45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1532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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