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9.14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로 끝났다. 북한의 조선적십자회는 엊그제 “보잘 것 없는 얼마간의 물자를 내들고 우리를 또 다시 심히 모독했다”면서 이명박 정부가 모처럼 내놓은 대북 수해지원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북측의 반응은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 하지만 자존심을 무엇보다 우선시 하는 북측체제의 특성을 감안해 저간의 사정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그 원인을 상당 부분 남측에서 제공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인도적 지원은 무엇보다 재해·재난을 입은 수혜국의 필요에 맞추는 것이 원칙이다. 공여국가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지원 항목과 규모가 달라진다면 진정성을 확보하기 어려워진다. 수혜국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정부는 인도적 지원의 기본전제부터 경시했다.
통일부는 지난 11일 밀가루 1만t·라면 300만개·의약품·기타 구호물품 등 100억원 상당을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북측에 전했다. 북측은 지난해 수해 당시에도 쌀과 시멘트, 복구용 장비를 “통크게 지원해달라”면서 남측이 제안한 영·유아용 영양식·라면·초코파이 등 지원항목을 거절한 바 있다. 북측이 항목과 규모까지 지정해서 지원을 요구하는 자세를 보인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중장비는 관련법에 따라 대북 지원이 불가능한 항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남측이 조금이라도 대북지원을 성사시킬 진정성이 있었다면 최소한 쌀과 시멘트를 항목에 포함시키는 유연성을 보여야 했다.
통일부는 그제 지원항목을 언론에 처음 공개하면서 “사안의 시급성을 감안했다”고 한껏 강조했지만 북한의 자연재해는 올 봄부터 시작됐다. 북한은 50년 만의 가뭄에 뒤이어, 6월 말부터 계속된 폭우 피해가 채 복구되기 전에 지난달 말 태풍 볼라벤과 덴빈의 영향으로 피해를 입었다. 사망·실종 176명, 이재민 22만명 외에도 주택 1만5000여채가 파괴됐다고 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지난달 중순 가뭄과 집중호우 만으로도 북한의 올해 쌀 수확량이 7% 줄어들 것으로 보고했다. 북한이 쌀과 시멘트가 절실한 상황임을 파악하고 있으면서 이를 지원항목에서 제외한 것은 애당초 적극적인 성사 의지가 없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대북 수해 지원은 그 자체의 인도적인 목적도 있지만, 파탄 난 남북관계를 조금이라도 복원해 다음 정권의 부담을 덜 수 있는 기회였다. 연내 이산가족 상봉을 성사시킬 계기로 삼을 수도 있었다. 결국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임기 종료 5개월을 앞두고 일찌감치 아무런 성과 없이 막을 내리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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