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25.
정부가 어제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에게 황조근정훈장을 주기로 한 것은 몰염치한 결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지난달 말 김 전 기획관에게 훈장 수여를 추진하다가 대선 국면에서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의식해 미뤄왔다. 하지만 대선이 끝나자마자 소나기 피하듯 훈장 수여를 결정한 것이다. 대선 이후 퇴임까지 현직 대통령에 대한 여론의 관심은 줄어들게 마련이다. 김 전 기획관에 대한 훈장 수여는 국민적 주목도가 떨어지는 임기 말 노골적인 측근 및 주변 챙기기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김 전 기획관은 지난 7월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을 국무회의에서 기습 통과시키려다가 들통이 나는 바람에 사퇴한 인물이다. 김 전 기획관은 대통령의 대선 후보 시절부터 외교안보 핵심 측근 역할을 맡아 비핵·개방·3000 공약을 기초한 장본인이다. 미국 네오콘을 뺨치는 대북 강경정책으로 임기 중 남북관계 파탄에 기여한 데 그치지 않고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개입을 긍정평가하는 입장을 공개 피력하기도 했다. 그 결과 현 정부 임기 중 모든 남북대화 통로가 막힌 것은 물론 북한이 핵 및 장거리 미사일 능력을 확장하는 것을 방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도 모자라 국민을 속이면서까지 한·일 정보보호협정을 추진한 인사에게 ‘직무에 정려하여 공적이 뚜렷한 공무원’에게 수여하는 근정훈장을 달아주는 것은 국가적 상훈의 권위와 대의마저 무시한 처사다.
임기 초부터 ‘고소영(고대·소망교회·영남) 정권’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이명박 정부는 친·인척 및 측근 비리에서 어떠한 정권 못지않게 탁월한 성적을 올렸다. 정권 차원에서 챙기려고 작심하면 앞으로도 챙겨야 할 측근·주변은 널려 있다는 말이다. 벌써부터 각종 비리로 영어의 몸이 됐다가 형이 확정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대통령 부인 김윤옥씨의 사촌오빠 김재홍 전 KT&G복지재단 이사장 등에 대한 임기 중 사면설이 나돌고 있다. 수억에서 수십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이들은 최근 나란히 상고를 포기해 이 같은 의혹을 사고 있다. 대통령이 좇아야 할 것은 대의요, 챙겨야 할 것은 국민이다. 대의가 아닌 사적 의리를, 국민이 아닌 측근을 챙기는 일은 영리단체 좌장에게나 맡길 일이다. 두달 남짓 남은 임기 동안이나마 올해 신년사에서 대통령 스스로 밝혔듯이 ‘자신과 주변’을 되돌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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