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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워싱턴리포트

재미동포의 정치실험

by 비회원 2007. 1. 28.

워싱턴리포트 김진호 특파원

대선출마를 선언한 힐러리 클린턴 미 상원의원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는 공화당도 네오콘도 아니다. 뉴욕의 유대인 사회다. 틈나는 대로 이스라엘을 방문했던 그의 중동문제 견해는 ‘사회적 소수’를 지향하는 정치관과 사뭇 다르다. 국제사법재판소가 국제법에 어긋난다고 판정한 ‘분리장벽’을 지지하고, 이스라엘을 ‘중동 민주주의의 횃불’이라고 칭송했다. 백악관 주인이 누가 되건 친이스라엘 노선이 흔들릴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없다.

미국 인구의 2%(600만명)에 불과한 유대인들의 로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스라엘에 대해 ‘삐딱한’ 견해를 갖고 있는 정치인을 낙선시키는 건 일도 아니다. 연방 상·하원 의원의 17%를 영향력 하에 두고 미 행정부를 쥐락펴락한다. 유대인의 힘은 10대 로비단체로 꼽히는 미국·이스라엘관계위원회(AIPAC)에서 나온다.

1959년 쿠바혁명 뒤 집단으로 망명한 쿠바인들 또한 뒤지지 않는다. 80만명에 불과하지만 플로리다주를 중심으로 강한 입김을 행사한다. 의회 회기마다 평균 15명 정도의 연방의원들을 망토 안에 두고 있다. 공화당의 지지기반인 미 상공회의소가 10여년 전부터 쿠바제재를 풀자고 호소해도 서북청년단을 방불케하는 이들의 행동에 묶여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

미국 내 소수민족들은 저마다 ‘정치행동위원회(PAC)’를 결성해 현실정치에서 지분을 요구하고 있다. 불행히도 ‘코리안아메리칸정치행동위원회(KAPAC·가칭)’는 아직 없다.

그러던 한인사회에 조용히 정치바람이 불고 있다. 발원지는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단체다. 96년 결성된 뒤 꾸준하게 투표참여 운동을 벌이면서 현재까지 유권자 5만명의 명부를 확보했다. 유력한 정치인들에게 ‘5만표’의 힘은 적지 않다. 지난해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에서 일본군대 종군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위력을 과시했다. 110대 의회 하원의원 435명에게도 다시 결의안 발의를 호소하고 있다.

지난 22일 워싱턴 외곽의 한인촌인 버지니아주 애넌데일에서는 같은 동기에서 ‘미주한인봉사단(Koamco)’이 출범했다. 1.5세대를 중심으로 봉사활동을 하면서 정치참여를 유도할 계획이다. 한인 100만명이 밀집된 LA에서도 유권자단체가 조만간 발족된다.

물론 갈 길은 멀다. 이민 100년사에 220만명을 헤아리는 코리안아메리칸의 정치참여는 시민권자 30%에 투표율 10%대가 현주소다. 전국 단위의 단일 교민단체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다. 많은 경우 미국에 살되 한국 내 정치경력을 지향하는 풍조도 여전하다.

막 닻을 올린 재미동포 사회의 정치실험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식의 지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정식 로비단체가 된다면 본국 정부의 지원이 불가능하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하지만 인큐베이터 단계에서는 영양공급이 절실하다. 정부는 재미동포들의 정치력 신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주미대사관이 이와 관련해 지난해 지출한 예산은 고작 2억여원에 불과하다는 전언이다. 언발에 오줌누는 격이다. 대규모 예산투입이 어렵다면 전략과 비전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육성방안에 대한 고민과 실천이 필요한 시점이다. 동포단체가 미국의 중동정책을 왜곡시키는 유대인 로비단체처럼 돼서는 곤란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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