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리포트 김진호 특파원
한국 정부가 북한 핵문제 해결에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기 시작한 것은 지난 10월 하노이 한·미 정상회담부터다. 특히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한국전쟁의 종전선언에 서명할 수 있다고 밝힌 부분이 백미였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당초 정상회담 브리핑에서 북한의 핵폐기에 따른 상응조치의 하나로 ‘평화체제’를 논의했다고 덤덤하게 소개했다.
하지만 토니 스노 백악관 대변인이 “종전선언에 서명할 수도 있다”고 전한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부터 어감이 달라졌다. “평화체제나 종전선언이나 같은 말”이라면서도 “미국이 말로만 하지 않고 실천에 옮기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 아니겠느냐”고 강조했다. “두 정상의 마음이 만났다(meeting of minds)”는 정서적인 표현도 동원했다. 한국언론은 대서특필했고 여야는 환영성명까지 냈다. 하지만 워싱턴에서 접하는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며칠 동안 한국을 흔들어놓은 ‘종전선언’은 지난 11월17일자 백악관 브리핑에서 한국민들이 미국의 진의를 몰라서 답답하다는 뉘앙스의 연장선상으로 나왔다. 정부 당국자들의 의미 부여에도 불구하고 뉴욕타임스를 제외한 전세계 언론이 ‘종전선언’에 별 의미를 달지 않은 이유다. 작년 9·19공동성명에 명시된 ‘구문’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한국 내에서만 낙관적인 말과 글이 확산되는 특이한 현상을 낳았다.
지난달 말 베이징에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와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간의 접촉결과에 대한 정부 당국자들의 전언도 희망적이었다. 베이징까지 달려간 한 고위 당국자는 미국이 북한과의 ‘깊이 있는 논의’에서 ‘놀랄 만한 새로운 제안’을 했다고 설명했다. 북한측이 당장 답을 못할 정도로 의외의 제안이 많았다는 말은 회담 전망을 더욱 밝게 했다. 글로 접한 이 당국자의 브리핑에는 흥분마저 묻어났다.
하지만 이 역시 워싱턴의 기류와는 온도차가 있었다. 미 국무부 공식 브리핑 등은 힐 차관보가 과거의 제안을 ‘반복했다’면서 새로운 제안을 줄곧 부인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에 대해 ‘향상된(enhanced) 경제·인도적 지원’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되레 “6자회담에서 진전이 있더라도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결의는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나쁜 행동에는 보상 않는다’는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핵실험까지 한 북한이 구체적인 조치로 핵폐기의 의지를 입증해야 한다는 게 워싱턴 조야의 중심 흐름이다.
뚜렷한 온도차를 보이던 서울과 워싱턴의 6자회담 예보가 약간 근접해진 것은 회담 개막을 하루, 이틀 앞두고부터다. ‘아주 어려운 회담’이 될 것(힐 차관보)이라는 신중함이 공유됐다. ‘놀라운 제안’을 안고 평양으로 돌아간 김부상으로부터의 답이 끝내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기회 있을 때마다 6자회담에서 적극적,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하지만 북핵은 본질적으로 북·미가 함께 춰야 할 탱고다. 희망을 갖는 건 좋지만 희망 섞인 전망은 혼란을 부추긴다. 당장 듣기 좋다고 섣부르게 낙관하는 것은 위험하다. 6자회담이 재개된다. 북핵이 정부 당국자들의 말대로 ‘관리’되는 게 아니라 뿌리째 해결되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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