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리포트 김진호 특파원
새내기 지도자에게 취임 몇개월간 껄끄러운 비판을 자제하는 각국 언론이 첫 출근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게 아픈 지적을 했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사형에 대해 견해를 밝힌 것이 화근이었다. 반총장은 “사형제는 각 유엔 회원국들이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공식적으로 사형제에 반대해온 유엔의 정책기조에서 벗어난 ‘실언’이었다.
민감한 현안에 대한 질문을 잘 넘겨온 반총장이 유엔 출입기자들의 덫에 걸린 이유는 그의 모난 처세 때문이 아니다. 단순히 사무총장 인수팀의 준비가 미숙했다고만 돌리기도 곤란하다. ‘기름 장어’라는 별명까지 갖고 있는 그다. 오히려 지금까지 그를 키워온 ‘토양’ 탓일 가능성이 높다.
사형제에 관한 한 상식적인 문명국과 야만국의 위치는 뒤바뀐다. 미국이 걸핏하면 인권상황을 개탄하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의 많은 나라가 사형폐지의 문명국이다. 한국은 미국, 중국 등과 함께 사형제를 쥐고 있다.
반장관의 ‘실언’은 그가 나고, 자라온 한국 사회가 지금까지 사형제 폐지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없음을 반영한다. 그가 37년 동안 몸을 담았던 외교부는 물론 우리 사회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정부는 반총장의 당선을 위해 국가적인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합격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수많은 글로벌 이슈의 깊은 의미까지 벼락공부로 채울 수는 없는 일이다.
유엔 출입기자들은 평균 연령이 50세가 넘는다. 노련한 질문공세는 이제부터다. 하지만 반총장의 입을 통해 ‘세계 속의 한국’이 다시 드러나더라도 낙담할 일은 아니다. 그때마다 미국을 바라보는 것만이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착각해온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는다면 약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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