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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워싱턴리포트

프리드먼의 아이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6. 11. 26.

워싱턴리포트 김진호 특파원

일면식도 없는 경제학자들의 이론이 때로는 우리의 일상을 치명적으로 지배한다. 외환위기 한파가 몰아치던 1998년 9월 전국을 놀라게 한 범죄가 발생했다. 40대 가장이 상해보험금을 노리고 열살배기 아들의 손가락을 자른 사건이었다. 한국 사회는 ‘인륜의 파탄’을 통탄하고 쉽게, 빨리 잊었다. 이를 ‘사회 범죄’로 해석하는 균형은 결핍됐었다. 외환위기라는 거시경제적 위기가 없었다면 아들의 손가락을 자르게 한 굶주림은 덜했을 것이다. 경제위기를 불러온 재벌의 방종과 정부의 방관은 범죄를 유발한 미필적 고의인 셈이다. 그렇다면 비극을 부른 시장의 실패를 어떻게 조절해야 할까.

현대경제학의 한 축을 이뤘던 시카고학파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이 지난 16일 별세했다. 미국 사회는 노학자의 업적과 오류를 비교적 균형 있게 소화하고 있는 것 같다. 반면에 대한민국에서는 주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 건설에 걸림돌이 되는 정부 개입을 비난하는 호재로 활용되는 성싶다.

프리드먼은 케인스 경제학이 압도적인 주류였던 60년대 국가 개입 경제의 위험성을 외친 학계의 이단아였다. 그는 옳기도 했고, 틀리기도 했다. 70년대 케인스 경제학의 오류가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 겹친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입증되자 숫자와 통계에 근거한 그의 통화주의는 빛을 발했다.

“좋은 정부는 나쁜 시장만 못하다”며 ‘작은 정부·낮은 세금’을 주창한 그의 이론은 케인스 시대에 숨죽이고 있던 미 보수우파에게 지침이 됐다. 레이건이 ‘언덕위의 빛나는 도시’를 건설하겠다며 대선에 나서자 그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프리드먼은 18개월 동안 국내외를 돌며 “정부의 시장 개입은 현대사회의 독”이라고 설교했다. 영국에서는 대처리즘의 교과서가 됐다. 하지만 케인스에게 오류가 있었듯이 프리드먼 경제학 역시 절대적인 이론은 되지 못했다. 고삐 풀린 금융자본이 국경을 넘나들면서 세계화가 본격화된 80년대 중반, 그의 통화주의는 이미 시효가 끝났다는 게 미 경제학계의 진단이다. 레이거노믹스의 성공 역시 세금은 낮췄지만 그의 지론을 거스른 재정팽창으로 가능했다는 게 로버트 솔로 미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의 지적이다.

융통성이 없이 ‘자유시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80년대 중남미 국가들 가운데 유일하게 성공한 나라는 시장은 물론 민권까지 군홧발 아래 놓였던 칠레뿐이다. 프리드먼은 구소련 블록 국가들에 급진적인 민영화를 충고했지만 그로 인해 불거진 지하경제와 올리가르히(신흥재벌)의 폐단에 대한 해법도 내놓지 못했다. 그는 사실 과도한 자유지상주의자였다. 마약 합법화와 정부의 의사면허와 운전면허 발부권마저 반대했다. 그는 여전히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미 보수우파의 등대로 남아 있다. 하지만 그가 죽기 직전에 치러진 미 중간선거에서 상·하 양원의 주도권은 다시 공화당의 손을 떠났다. 갈수록 불안해지는 일자리와 심화되는 빈부격차, 줄어드는 실질소득에 시달린 미 중산층 유권자들은 ‘프리드먼의 아이들’을 버렸다.

프리드먼은 생전에 한국의 고도성장 비결을 “군사정권이 경제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기업에)엄청난 자유를 준 덕분”이라고 분석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시대가 오래전에 끝났듯이 한국 역시 개발독재 시대를 접은 지 오래다. 한국 사회 일단의 느닷없는 ‘프리드먼 현상’이 혹 그 시절 향수에서 나온 게 아니기를 바란다. 방종한 자본에는 늘 고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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