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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破邪顯正

‘우리민족끼리’ 수사 정치적 악용을 경계한다

by gino's 2013. 4. 8.

 

잊을 만하면 고개를 드는 우리 사회 일각의 레드 콤플렉스가 다시 등장하고 있다. 하필 북한의 노골적인 전쟁위협과 한·미 합훈 탓에 한반도 안보 위기가 전례없이 고조된 시점에 또다시 고질병이 도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제 해커집단 어나니머스가 지난 4일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대남 인터넷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 사이트를 해킹하고 그 회원 계정 9001개와 함께 가입자 이름과 신상정보를 공개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국내 일각에서 이들이 공개한 회원명단을 받아 온·오프라인 신상털기에 돌입함에 따라 물의를 빚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안기부 X파일 등의 사례에서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를 인정할 수 없다는 독수독과(毒樹毒果)론을 강조하던 사정당국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내사에 돌입하면서 마녀사냥식 사상검증 등 이념적, 정치적 악용의 우려마저 낳고 있다.

검찰과 경찰은 일단 어나니머스가 공개한 국내 가입자 2000여명의 아이디를 확보해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다고 한다. 아직까지 회원 가입 자체를 위법행위로 단정할 수 없다는 법리해석이 지배적이다. 다만 사이트상에 이적 성향의 글을 게시하거나 이적 문건을 배포했다면 처벌 근거가 될 수 있다. 문제는 법 절차에 따른 내사와 무관하게 반북 성향 누리꾼들에 의한 인민재판식 신상털기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누리꾼들은 벌써부터 가입자들의 신상정보 및 활동내용을 공개하면서 ‘죄수’ ‘간첩’ ‘좌익사범’ 등의 딱지를 붙이고 있어 자칫 대규모 명예훼손 논란을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통합진보당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관계자들이 회원으로 가입한 것을 빌미로 진보 성향 정당·사회단체에 대한 무차별적 비난도 가해지고 있다.

‘우리민족끼리’는 2004년 유해사이트로 분류돼 국내에선 접속이 차단됐다. 하지만 북한 정보를 필요로 하는 학생과 전문가, 언론인, 비정부단체 관계자 등이 우회적으로 접근해온 것이 사실이다. 단순한 회원 가입 자체만을 놓고 색안경을 끼고 볼 사안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이다. 북한의 선전·선동에 휘둘릴 정도로 허약한 사회가 아닌 것이다. 북한의 권위주의 체제를 비판한다면서 비슷한 방식으로 대응한다면 스스로 취약성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시민 개개인의 머릿속을 검증하겠다고 나서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정체(政體)를 송두리째 흔드는 반민주적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정부는 엄밀한 잣대로 일각에서 부추기는 혼란을 다잡아야 할 것이다. 수정 : 2013-04-05 21:4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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