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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워싱턴리포트

‘대한남아’의 굴레

by 비회원 2006. 10. 15.

워싱턴리포트 김진호 특파원

1980년대 말부터 언론에 몸담기 시작한 기자가 체득한 것 가운데 한 가지는 우리 스스로 타인의 관심에 지나치게 신경을 쓴다는 사실이다. 지난 70년대 프로복싱 세계챔피언이 탄생할 때마다 열광했던 국민적 관심은 한국 사회가 세계의 일원으로 다가갈수록 조금씩 넓고, 깊어졌다. 부끄러운 일이건, 자랑스러운 일이건 객관적인 시각에서 사안을 냉정하게 평가하기보다는 일단 바다 건너의 시선에 신경쓰는 성향이 됐다. 우리의 성취가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어떤 위치인지 꼼꼼하게 따져보는 과정은 ‘대한 남아의 쾌거…’ 운운하는 흥분에 파묻히기 십상이었다. 걸핏하면 크고, 작은 ‘해외 반응’을 전해왔던 언론이 이러한 사고를 부추기고, 여론이 이를 요구하는 순환구조가 굳어졌다.

문제는 이처럼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면서도 타인에 대한 배려는 상대적으로 결핍됐다는 사실이다. 한국전쟁과 이후 경제적 궁핍과 천박한 군사독재를 경험하면서 해외의 관심에 끊임없이 목말라해왔으면서도 정작 세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다. 언론도 매일반이다. 많이 나아졌지만 국회의원들이 티격태격하는 것은 시시콜콜 옮기면서도 지구 반대편에서 수백만명의 어린이들이 한줌의 알곡이 없어 죽어가는 글로벌 현실에는 상대적으로 둔감했다. 그 결과 지난해까지 세계 11위 경제대국인 한국이 그동안 국제사회에 배푼 것(20억달러)은 받은 것(1백20억달러)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공적개발원조(ODA)를 비롯한 원조규모 대차대조표의 결과다.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는 퉁명스러운 반문은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인식하는 데 큰 구멍을 남긴다. 우물 안으로 쏟아지는 세계의 관심에 그리 연연하면서 우물 밖의 세상을 보는 데 둔한, ‘오지 사고’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전쟁으로 찢긴, 궁핍한 시대를 거친 한 시골소년이 지난 주말 ‘세속의 교황’이라는 차기 유엔 사무총장에 뽑혔다. 벌써부터 주판알을 놓는 소리가 전해진다. 유엔에 한국인 직원을 몇명 더 취업시킬 것인지에 대한 타산에서부터 유엔을 우리의 국익에 맞게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셈법이 오간다는 말이 들린다.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북핵 위기에서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이 중요한 중재 역할을 하게 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내년 1월 취임 뒤 그가 맡게 될 사안들은 대부분 우리의 관심 밖이었거나, 아주 적은 관심을 보여왔던 문제들이다. 유엔 개혁과 팔레스타인 및 레바논 사태, 수단 다르푸르의 참극, 인도적인 지원, 인종차별과 박해받는 이민자, 에이즈, 아프리카의 궁핍 등 글로벌 현안들이다.

12살이었던 소년은 운동장 연단에 올라 유엔을 상대로 소련군의 헝가리 진입을 비난하면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동구권 주민들의 투쟁을 도와달라는 호소문을 낭독했다고 한다. 어른들이 작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무대에서 아이들이 꼭두각시 역할을 해야 했던 냉전시대의 단면이었다. 한국과 한국민은 그를 이 순간까지 키웠지만, 유엔 사무총장직에 오른 뒤에 그는 세계의 사랑방에서 글로벌 아젠다를 고민해야 한다. 행여 그를 민족적, 국가적 탐욕에서 또 다른 ‘연단’에 세우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대한남아’의 구속에서 그를 풀어줘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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