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중소기업들이 개성공단에 남겨둔 완제품과 원·부자재의 반출을 위한 남북당국 간 실무회담이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북한의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대변인은 엊그제 우리 측의 회담 제의를 ‘교활한 술책’이라고 비난하면서 “통신타발이나 물자반출 문제와 같은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라 근본문제를 푸는 데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북한이 일방적 주장으로 (대화 제의를) 폄훼한 것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논평을 내놓았다. 남측 잔류인원 7명이 지난 3일 귀환한 이후 남북 간 어떠한 후속 논의도 없이 방치됐던 개성공단 문제의 해결 전망은 더욱 어두워질 수밖에 없게 됐다.
북측의 반응을 보면 정·경분리 원칙을 무시하고 개성공단 정상화 문제를 여전히 군사, 정치적인 맥락 속에서 보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정전체제 60년을 맞은 시점에서 한반도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는 대의는 틀린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일에는 순서가 있고 경중이 있다. 개성공단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지엽적인 문제에서부터 접점을 찾아가야 한다. 추가 협의를 해나가기 위한 통신선의 복원 및 물자 반출 문제와 같은 ‘작고, 사소한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면서 새롭게 신뢰를 쌓아가야 하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사업기반을 두고 온 남측 기업인들만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니다. 북측 근로자 5만여명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을 터이다. 지금 이 시점에 최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은 이러한 어려움을 덜어주는 일일 것이다.
더구나 개성공단이 가동을 멈추기까지 철저하게 무시된 정·경 분리의 원칙은 결코 지엽적이고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미래 희망의 근거까지 도려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측이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의 물자 반출 문제를 ‘근본적인 문제’와 연결시킨 것은 스스로 ‘6·15의 산아’라고 의미 부여를 하고 있는 개성공단을 살릴 의지가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경제특구 문제를 다루는 지도총국 대변인이 ‘근본적인 문제’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도 하다. 북측은 진정 개성공단을 이대로 방치해도 좋다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개성공단의 정상화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현안을 놓고 박근혜 대통령이 주무부처인 통일부와 어떠한 상의도 없이 불쑥 회담 제의를 공표한 절차적인 문제 역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달 북한 노동당 외곽조직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발표에 청와대가 응대하고 나선 것보다 더욱 심각하게 정부의 의사결정 시스템이 붕괴됐음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청와대가 조평통의 카운터파트가 아니듯이 대통령이 개성공단 정상화의 주무 당국자는 아니다. 정부 출범 석달이 다 되도록 여전히 번지수를 제대로 찾지 못한 채 대북정책의 ‘1인 시스템’을 고수한다면 어떻게 개성공단 문제를 풀고, 나아가 한반도 신뢰의 원대한 프로세스를 열어가겠다는 것인지 참으로 답답할 뿐이다. ㅣ입력 : 2013-05-16 21: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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