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 평양-워싱턴 '닮은꼴 도시' 김진호 특파원
많은 나라를 방문하지는 못했으되 다녀본 나라의 수도 가운데 가장 비슷한 인상을 주는 곳을 꼽으라면 개인적으로 평양과 워싱턴을 들겠다. 두 도시 모두 풍광이 수려한 데다 평평한 땅에 건설된 계획도시이고 곳곳에 역사적인 의미를 담은 기념관을 많이 갖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평양에 김일성광장, 개선문, 인민문화궁전 등이 있다면 워싱턴에는 백악관과 의사당, 링컨 기념관 등이 있다. 한국전쟁 이후 건립된 평양의 기념관들이 담고 있는 정치적인 의미만 탈색시킨다면 두 도시는 모두 의도적으로 배치된 의미심장한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두 개의 아름다운 탑이다.
을밀대와 만수대, 만경대 등 유난히 ‘대(臺)’자 돌림 지명이 많은 평양 한복판에 주체사상탑이 있다면, 백악관 인근에는 워싱턴 기념탑이 있다. 탑 자체의 건축미를 말하자면 포토맥 강을 내려다보는 워싱턴 기념탑이 장대한 위용을 갖추고 있지만 굽이져 흐르는 대동강과 어우러진 풍광을 생각하면 주체사상탑의 경관 역시 빼어나다.
흥미로운 것은 두 곳에서 모두 자신들의 탑이 철재를 사용하지 않고 지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이라고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굳이 정확한 높이를 따지면 주체사상탑이 워싱턴 기념탑보다 0.7m 높다. 본체는 150m에 불과하지만 20m 높이의 횃불을 더했기 때문이다. 남북전쟁의 소용돌이를 지나면서 37년이 걸려 1885년에야 완공된 워싱턴 기념탑의 높이는 169.3m다. 주체사상탑이 간발의 차이로 워싱턴 기념탑을 제친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 같다. 연전에 찾은 주체사상탑의 안내인이 워싱턴 기념탑에 견주어 세계 최고임을 강조한 대목이 이를 입증한다. 결국 북측이 더 높은 깃대를 꼽은 것으로 정리됐지만 냉전 시대 남북간에 휴전선을 사이에 놓고 벌였던 남측 대성동과 북측 기정동 마을의 깃대 높이 경쟁을 연상시킨다.
반면에 워싱턴의 안내인들은 철골을 사용하지 않은 탑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탑이 한반도 북쪽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거나 알고 나서도 크게 개의치 않는 눈치다. 그러면서도 워싱턴 기념탑의 역사성에 대해서는 철저하다. 워싱턴 시는 혹여 기념탑이 가릴까봐 건축물의 높이를 워싱턴 기념탑보다 낮게 짓도록 제한하고 있다. 워싱턴 기념탑이 미국의 건국정신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판단에서 일 게다.
많은 미국인들에게 ‘0.7m의 차이’를 만들어 낸 북측의 사고를 이해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수백만명을 굶겨 죽이면서도 대오를 유지하고 있는 북측의 생각을 이해하지 않는 한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이고, 외교적인 해법은 요원하다. 0.7m의 차이를 무시해서는 안 될 이유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징벌하기 위한 후속조치를 단행하는 어수선한 상황에서 연일 무거운 주제들이 신문 지면을 덮고 있다. 2차 북핵 위기가 발생한 지도 4년이 돼간다. 미국이 대북 추가제재 조치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사이에 북한은 핵실험을 비롯한 또 다른 강수를 준비하고 있다는 게 미국 조야의 관측이다. 위로 선 평행선 같은 두 개의 탑을 비교해보면서 닮은꼴의 두 도시가 자매관계라도 맺을 수 있는 날이 언제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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