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인들은 격언을 좋아한다. 당신은 배우 출신이니까 격언 몇 개쯤은 쉽게 외울 수 있지 않겠나.” 국제정치 무대에서 ‘신뢰’라는 단어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한 정치인은 로널드 레이건일 것이다. 냉전 말기 미국 작가 수잔 매시가 레이건에게 익힐 것을 권한 격언은 바로 “신뢰하되, 검증하라”는 레닌의 말이었다. 고르바초프가 1987년 중거리핵전력(INF) 감축협정 조인식장에서 “당신은 회담 때마다 이 말을 되풀이한다”고 푸념했을 정도였다. 레이건은 능청스럽게 “그 말을 좋아할 뿐”이라고 응수했다. 냉전 시절 미국의 소련보다 더욱 어려운 대화상대가 남한의 북한인지도 모른다.
한반도에너지기구(KEDO)에서 근무했던 미첼 리스 전 백악관 정책실장이 연전에 들려준 말은 신뢰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리스는 미국인 동료들에게 북한 사람들이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해온다면 흘려듣지 말고, 일단 시계부터 바라보라고 충고하곤 했다고 한다. 그 시간이 정말 아침인지 확인하고, 아침이 맞다면 왜 좋은지를 다시 물어보라는 당부도 곁들였다. 북한 인사의 말을 무조건 불신하라는 말이 아니었다. 체제 특성상 북한의 행동을 예단하기 어려운 만큼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것을 직접 묻고 확인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느닷없이 신뢰에 얽힌 일화를 늘어놓은 것은 여전히 불투명한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구상 때문이다. 지난달 11일 북한에 처음으로 사실상 대화 제의를 한 뒤 박 대통령은 “개성공단 문제 등 현안이 많은데 (북한과) 만나서 왜 그러는지 들어봐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한 바 있다. 직간접적으로 접했던 ‘신뢰’의 의미와 큰 틀에서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지난 15일 언론사 정치부장단 간담회에서 내보인 ‘대범함’은 혼선을 준다. 박 대통령은 “(북한이) 가뜩이나 예측이 불허한 행동을 많이 하는데 어떤 이유 때문인지 알아서 뭐하겠어요. 알 수도 없으니까”라고 했다. 대통령은 이어 “우선 중요한 것은 북한이 이렇게 행동하면 우리는 이렇게 간다”는 것이라면서 북한이 드러내보인 행동만을 보고 판단하겠다고 했다. 북한의 속내를 알 필요조차 없다는 말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대통령의 한마디는 그 자체가 신뢰의 척도가 된다. 두 가지 말 중 박 대통령이 생각하는 신뢰는 과연 무엇인지 묘연해진다.
정상외교는 모양새와 내용이 모두 중요하다. 이달 초 한·미 정상회담은 외양은 화려했지만 내용은 빈약했다. 절반의 성공 또는 절반의 실패였다. 한·미 공조를 확인했다지만, 미국의 입장에 맞춘 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의 주역으로서 현 위기를 극복하고 해결모드로 전환하기 위한 어떠한 아젠다도 내놓지 못했다. 정부는 미국 측이 지지를 표명했다고 한껏 강조하지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아직 정책이라고 할 수 없다. 두루뭉술한 구상 수준에 머물고 있다. 어떤 반찬을 어떤 순서로 어떻게 배열할지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은 채 “언젠가 밥상을 차리겠다”는 공허한 다짐에 다름 아니다. 한·미 정상은 그럼에도 북한의 도발에 강력하게 대응하되 대화의 창은 열려 있다고 되풀이해서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그랜드 바겐’은커녕 임기 내내 북한의 선(先) 핵포기만을 기다리다가 푼돈 거래조차 성사시키지 못한 이명박 정부와 판박이일 것이라는 의심을 갖게 하는 이유다.
박근혜 대선공약 한반도신뢰프로세스 (경향DB)
박 대통령은 다음달 중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또 다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한반도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시작되기 전까지 대북 억지력과 대북 대화의 두 개의 축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한·미 정상회담은 대북 억지력 강화 공조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한·중 정상회담은 실질적인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한 모색의 기회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의 안정을 바라면서도 미국은 대북 억지력 강화에, 중국은 대북 대화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두 번의 정상회담 결과를 겹쳐 놓아야 비로소 유례없는 위기에서 벗어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겠는가.
레이건이 지겹도록 반복한 ‘선 신뢰·후 검증’의 공식은 단기간에 완성되지 않았다. 미국과 소련(러시아)은 INF 협정 체결 이후 13년 동안 상호 감시체제하에 2700여기의 중거리 미사일을 폐기했다. KEDO의 실험은 북한의 행동을 성급하게 예견한 조지 부시 행정부의 단견 탓에 중단됐다. 프로세스는 어차피 일개 정권의 임기 안에 완성되지 않는다. 현 정부 임기 안에 이 중 어떤 것을 정책으로 구현해낼 것인가. 한·중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팀이 이 정도는 고민하고 있기를 바란다.
대북 압박을 강화한 것 같다는 중국이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분쟁에도 불구하고 아베 신조 일본 내각의 대북 독자외교를 왜 환영하고 나서는지 성찰하는 것도 방법의 하나겠다. “대화 제의를 받지 않는 북한 탓”이라는 투정이나 계속한다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이불 쓰고 외치는 만세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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