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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동과 청와대 사이

칼럼/경향의 눈

by gino's 2013. 6. 18.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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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지도에 따르면 서울 장충동 족발집에서 청와대 분수대까지 도보와 지하철로 24분이 소요된다. 장충동~청와대 거리가 궁금해진 것은 장충동에 자택을 두고 있는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육사 27기)이 지난 2월24일부터 5월24일까지 꼬박 석 달 동안 귀가하지 않고 근무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나서다. 새벽이나 심야에 자동차를 이용하면 20분 안쪽으로 충분할 성싶다. 그는 청와대 인근 부대 장교막사에서 잠을 자고 식사는 거의 구내식당에서 해결했다고 한다. 귀가하지 않고 장교숙소를 이용하는 것은 일선부대에 새로 전입온 장교들이 종종 선택하는 근무방식이다. 물론 석 달 동안 그가 매일 여퉈둔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장 김격식 .
김격식 조선인민군 4군단장(현 총참모장)


김관진 국방부 장관(28기)은 2010년 12월 취임 직후 집무실에 북한의 김영춘 당시 인민무력부장과 김격식 4군단장의 사진을 걸어놓게 했다. “적장의 생각을 읽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김 장관이 휴전선 이남 서북지역을 맡는 3군사령관이었을 당시 김격식이 북한군의 핵심전력인 황해북도 평산의 2군단장이었다고 하니 오랜 적장에 대한 경계심이 발동하지 않았나 싶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 직후 국방의 막중한 임무를 맡은 장수의 결의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김 장관은 더 이상 야전 지휘관이 아니다. 사진을 붙여놓더라도 대상을 잘못 골랐다. 굳이 격(格)을 따지자면 국방부 장관은 북한 군부의 실권을 틀어쥐고 있는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이나 총참모장의 사진을 붙여 놓았어야 한다. 



유난히 허리가 꼿꼿한 김장수 실장이 누란의 위기에 놓인 국가 안보가 염려돼 불편한 잠자리를 선택한 것을 무작정 탓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청와대 안보실장 역시 야전 지휘관의 자리가 아니다. 주로 외교·국방 전략에 몰두하는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도 다르다. 통일문제까지 더해 고도의 조율을 해야 하는 컨트롤타워의 정점이다. 집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짧은 출퇴근 길에 생각을 다듬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정전협정 백지화를 선언하고 서울과 워싱턴을 공격하겠다는 북한의 전쟁위협으로 조성된 지난봄의 안보위기가 설령 ‘누란의 위기’였다면 일부러라도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 안보실장 자리다. 



34조원을 웃도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집행하는 국방부 장관 역시 야전 지휘관의 각오로 수행할 자리는 아니다. 65만 국군의 전투력은 물론 후생복지에서부터 미국, 일본, 중국 등 주변국의 군사전략까지 면밀히 검토하고 최적의 선택을 고민해야 하는 종합예술에 가깝다. 적장의 전략을 꿰뚫어보고 대응책을 모색하는 것은 합참의장에게 맡길 일이다. 


서부전선 전방부대를 순시하고 있는 김관진 국방장관 (경향DB)



9·11테러 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개의 전쟁을 수행했던 미국은 정치인이나 사업가, 대학총장 출신을 국방부 장관 자리에 앉혔다. 2000년 이후 미국 국방장관 가운데 유일하게 군경력이 주목을 받은 척 헤이글 현 국방장관은 전투부대 병장 출신이다. 그가 병영에서 잠을 자거나 분대장 시절의 상무정신으로 국방 수장의 역할을 한다면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유난한 육사 사랑은 이례적인 ‘선군(先軍)인사’로 귀결됐다. 남재준 국가정보원장(25기)과 박흥렬 경호실장(28기)도 중책을 맡았다. 남 원장이 육사 4학년 때 2학년(김장수), 1학년(김관진·박흥렬) 생도들이 나란히 등용됐다. 4명 모두 합참 작전본부장 또는 육군참모총장 보직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받았다. 주특기 530의 작전통이었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갖는다. 북한 담당 김규석 국정원 3차장(29기)을 더하면 육사 출신 5인방이다.



청춘을 국가에 바치겠다는 각오로 군문에 들어가는 것은 숭고한 선택이다. 하지만 상무정신은 군복을 입었을 때나 발휘하는 것이다. 혹여 여전히 일선 지휘관의 후각으로, 또는 군사작전의 입안 경험에 의존해 업무를 본다면 곤란한 일이다. 국가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망칠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육사 출신 고위당국자들의 근무 스타일에 생뚱맞게 현미경을 들이댄 것은 출범 100일을 갓 넘긴 정부에서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4월 북한의 전쟁 위협에 맞불을 놓은 강성발언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지난 4월 초 개성공단 사태가 불거지자마자 이를 인질 구출을 위한 군사작전으로 연결시킨 김관진 장관의 발언 뒤 정부의 관심은 국민의 신변안전에 집중됐다. 


박대통령과 유임된 김관진 국방장관 (경향DB)



북한에 당국 간 실무회담을 제의하면서 24시간 안에 답을 달라는 요구 역시 군사작전의 냄새가 풍겼다. 남북당국회담이 무산되는 과정에서는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군인정신이 읽힌다. 이 모든 결정이 대통령 1인의 판단에 따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통치권자로 하여금 더 높은 차원의 결정을 하도록 조언하는 것 역시 외교안보 수장들이 봉급을 받는 이유라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장충동과 청와대는 정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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