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당국회담 무산, 남이나 북이나 참 실망스럽다
오늘 열릴 예정이던 남북당국회담이 끝내 무산됐다. 남북이 어제 남측 수석대표와 북측 단장의 지위를 놓고 판문점에서 수차례 명단을 수정제안하는 신경전 끝에 판을 깨고 만 것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뿔을 고치려다 소를 죽이고 만 형국이 됐다. 남과 북이 서로 지키려 했던 것이 자존심이건, 명분이건 졸렬하기 짝이 없는 모양새를 겨레와 세계에 내보인 것이나 다름없다. 작은 것에서부터 조금씩 신뢰를 구축해 나가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의 신뢰 프로세스는 작은 데 연연함으로써 갈 길을 잃었다. 파국에 처한 남북관계를 개선하자면서 북한이 지난 6일 내놓은 전격적인 회담 제의 역시 빛이 바랬다. 북측 단장으로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을, 남측 수석대표로 류길재 통일부 장관을 각각 고집했던 남북 모두 피장파장이다. 하지만 회담 무산의 더 큰 책임은 박근혜 정부에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북한에 강한 유감을 표하면서 대표단 구성이 “국민 상식과 국제기준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지만 회담 무산의 책임 떠넘기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배경이 어떻든 이번 회담은 북한의 전격 제의로 마련된 기회였다. 정부의 행태는 시종 더 많은 양보를 받아내려는 기싸움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북한은 지난 6일 회담 제의와 함께 회담 장소와 일시를 남한에 일임했다. 남한은 ‘12일 서울 장관급 회담’으로 장소·일시는 물론 회담의 격을 정해 역제의했다. 북한이 이를 수용하자 이번에는 실무접촉 장소를 개성에서 판문점으로 변경 제의해 관철시켰다. 실무접촉과 대표단 명단 교환과정에서는 줄곧 북측 단장의 지위를 놓고 물러서지 않았다. 남한은 정부가 지배하지만 북한은 당이 지배하는 체제다. 업무로 보면 통전부장은 남한의 국정원장과 통일부 장관을 합한 부총리 격이다. 정부는 그 차이를 애써 외면한 셈이다.
정부는 북한에 대해 “책임을 갖고 성의 있게 (다시) 대화에 호응해오길 바란다”고 당부했지만 누워 침뱉기다. 정부 스스로 성의 있게 임해왔는지 되돌아보길 바란다. 박근혜 정부가 대화의 끈을 다시 잇지 못한다면 이명박 정부보다 남북관계를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북한 역시 회담 제의 당시의 정신으로 돌아가 회담 재개를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서로 한 발씩 물러서지 않는다면 상호 불신의 업보만 깊어질 뿐이다. 회담 무산 소식에 개성공단 입주기업인들은 물론 수십만 이산가족이 땅을 치고 있다. 남북 모두 그야말로 책임 있는 자세로 나설 것을 촉구한다. ㅣ수정 : 2013-06-11 22: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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