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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읽는 세계, 한반도

존 F. 케네디의 13일

by gino's 2013. 12. 12.

[책으로 세계읽기]핵 위기 넘긴 케네디의 리더십

 

 


▲ 존 F. 케네디의 13일…셀던 M. 스턴·박수민 역 | 모던타임스

1962년 10월22일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을 통해 소련의 쿠바 미사일 배치 사실을 공개하면서 쿠바에 대한 해상봉쇄를 선포했다. 이 연설은 교묘하게 진실을 오도했다. 우선 이탈리아와 터키에 주피터 미사일 45기를 배치해 소련의 안보를 먼저 위협한 것이 미국이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았다. 또 ‘피그만 상륙작전’의 실패 이후에도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혁명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몽구스 작전’이라는 비밀 전쟁을 케네디 자신이 진두지휘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숨겼다. 케네디는 사실 결코 바람직한 지도자가 아니었다. ‘완고하고 타협할 줄 모르는 냉전의 전사’(미국 역사학자 토머스 패터슨)였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평가일 게다. 케네디는 외교 수단보다 군사적인 방안에 더 매력을 느꼈고, 모든 사례에서 이기려고 기를 썼다. 적국에 대한 섬멸전략을 쓴다는 공약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으며, 공개적인 대결을 선호한 탓에 쿠바를 괴롭혀 미사일 위기를 부채질했다.

여기서 끝났다면 케네디는 그저 그런 대통령의 하나로 역사의 넘겨진 페이지 밑에 깔렸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자리가 주는 중압감이 케네디를 변화시켰다. 최근 번역, 출간된 미국 역사학자 셀던 M. 스턴의 <존 F. 케네디의 13일>은 케네디가 비타협적인 ‘냉전의 전사’에서 피스메이커로 거듭나는 과정을 보여주는 기록이다. 미국이 소련의 쿠바 미사일 배치를 확인하고 위기를 해소하기까지 13일간 백악관 각료회의실에서 열렸던 국가안전보장회의 집행위원회(엑스콤) 회의의 음성파일 녹취록이다. 여기에 객관적인 사실과 저자의 평가가 더해졌다.

일단 대통령직에 오르면 재교육을 받을 수 없다. 깊이 고민하고 성찰할 시간도 없다. 이런저런 사건이 너무 빨리 벌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혼자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대부분의 경우 대통령은 교육과 타고난 지성, 경험이 뒤섞인 직관에 의지해야 한다. 케네디는 대통령직을 ‘고독한 투우사’에 비유했다. 해군 장교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전쟁의 허상을 목도한 케네디가 그 고독 속에서 깊이 고민한 것은 승전의 가능성이 아닌, 전쟁의 결과였다. 합참 수뇌부는 ‘한 차례의 강력한 타격’으로 쿠바의 미사일 기지와 미그 전투기를 제거할 것을 제안했다. 대통령의 분신과도 같았던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은 한발 더 나아가 쿠바에 대한 전면적인 침공을 주장했다. 케네디 역시 회의 초반에는 총공습을 생각했다. 하지만 미국과 소련이 강 대 강으로 맞서면 적게는 적지에 놓인 서베를린을 소련에 잃을 수 있다. 크게는 인류를 핵전쟁의 덫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할 수 있기에 쉽게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소련의 핵미사일 공격으로 8000만에서 1억명의 미국인이 사망할 수도 있었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대통령이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귀를 여는 것이었다. 난상토론이 벌어지는 엑스콤 회의에서 케네디는 거의 화를 내지 않았다. 오만과 독선에 빠지지도 않았다. 누군가를 심하게 몰아붙이지 않았고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좀처럼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덕분에 회의 참석자들은 상정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철저하고 소모적일 만큼 상세하게 논의할 수 있었다.

외교에서 100% 승리는 있을 수 없다. 미국의 턱밑에 겨눠진 칼을 치우기 위해서는 미국이 소련과 쿠바의 턱밑에 겨눈 칼도 치워야 한다. 위기의 절정에서 케네디는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게 마지막 수를 던진다. 소련의 미사일 철수 및 미국의 쿠바 불침공 약속을 공개적으로 교환했고, 미국이 터키에 배치한 주피터 미사일의 철수를 밀약했다. 자칫 미국이 동맹국인 터키를 저버린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결정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역사적인 13일 동안 케네디는 전쟁을 하지 못해 안달이 난 엑스콤 회의 참석자들과 합참, 의회 지도자들의 호전적인 조언에 대해 거의 혼자 맞섰다. 퇴역 장성들이 유난히 많은 박근혜 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참석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김진호 선임기자 jh@kyunghyang.com>


입력 : 2013-12-06 18: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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