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케넌의 미국 외교 50년
조지 F. 케넌·유강은 역 | 가람기획

 

 

 

 

[책으로 세계읽기]‘냉전 설계사’의 외교전략 결함

김진호 선임기자 jh@kyunghyang.com

 

정전협정이 환갑을 넘겼지만 남북 간 군사적 대치는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북한을 국내정치에 활용하면서 냉전시대의 풍경이 되살아나고 있다. ‘김정은의 북한’은 장성택 처형을 계기로 공포정치의 끈을 바짝 죄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및 집단자위권 추진,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정책과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로 한반도 안팎의 정세는 격랑에서 흔들리고 있다.

‘냉전의 설계사’였던 조지 케넌의 봉쇄이론만으로 작금에 한반도 안팎에서 벌어지는 먹구름을 파악하기에는 확실히 부족하다. ‘포린 어페어스’ 1946년 7월호에 X라는 가명의 기고문을 통해 냉전시대 소련 봉쇄론을 펼쳤던 케넌의 이론은 결함이 많았다. 무엇보다 전후 미국의 세계전략에서 한 축을 이루는 핵무기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반도 안팎에 찾아온 신냉전시대에 즈음하여 케넌의 이론은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틀을 제공한다. 미국 시카고대학 출판부가 지난해 보완 출간한 <조지 케넌의 미국 외교 50년>(가람기획)이 최근 한글로 나왔다.

케넌은 미국이 터무니없는 도덕적 우위성에서 전면전을 벌여 상대국을 제거하는 것에 반대했다. 그의 봉쇄정책은 세력균형을 통해 상대국을 견제하되 제한전으로 파국을 피하려고 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한 까닭이다. 1980년대에는 미국이 핵무기에 대해 ‘선제 핵무기 사용금지’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고도 했다. 봉쇄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누구보다 소비에트 이데올로기의 역사적 연원과 권력의 특성을 꼼꼼하게 관찰했다. “소련의 압력을 봉쇄하려면 끊임없이 변화하는 지정학적, 정치적 지점들에서 소련 정책의 변화와 책략에 맞춰 기민하고 주의 깊은 반격을 잇달아 가해야 한다.” 여기서 소련을 중국으로 대체하면 현재 미국의 대중 정책과 맥을 같이한다. 냉전시대 강대국으로 부상한 소련에 대항할 국가가 유럽과 아시아에는 없었다. 케넌은 영국과 일본을 앞세운 봉쇄전략을 구상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이 양대 주요국가(G2)로 부상하면서 과거 소련을 대신하고 있다. 케넌이 살아 있다면, 미국은 과거 소련에 대해 그랬듯이 중국을 봉쇄하는 데서 일본이 중심 역할을 하기를 기대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냉전시기에 그랬듯이 서태평양 지역에 주둔한 군대를 증강하고 중국 봉쇄를 위한 ‘균형동맹’을 끌어모아야 한다. 한·미·일 3각동맹과 일본의 군비 강화 등 동북아에서 현재진행형인 미국 전략의 밑그림이다.


미국은 그나마 중국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포위, 견제하면서도 한편으로 G2의 파트너로 협력을 모색한다. 1970년대 미·중 데탕트 과정에서 한반도를 객관적 대상으로 보는 미·중의 협력정신은 북한 핵문제 해결 과정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미·일과 미·중을 잇는 협력의 큰 줄기에서 한국은 공히 조연 또는 부속물에 머물고 있다. 만성적인 연방정부 적자를 빌미로 내세우지만 일본의 재력과 방위력 증강을 통해 중국을 억제하려는 미국의 전략은 그 근원이 오래됐다. 케넌의 시야에서 한국은 없었다. 1951년 대중연설에서 “오늘날 미국은 일본이 반세기 가까이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서 맞닥뜨리고 떠맡은 문제와 책임을 물려받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미국이 한반도 유사시 일본의 개입을 공개적으로 요구할 가능성은 적지만, 배제할 수도 없는 이유다.

케넌의 봉쇄이론을 현재 한반도 주변 정세 분석에 동원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다만 미국의 대외전략에 문신처럼 새겨진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깊이를 더할 수는 있다. 동북아시아는 미국의 대중, 대북 봉쇄가 겹치는 지역이다. 케넌의 봉쇄전략에는 관여(engagement)와 격퇴(rollback)가 있다. 네오콘으로 거듭난 조지 부시 1기 행정부의 격퇴론자들뿐 아니라 국제제도를 중시하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역시 관여와는 거리가 멀다. 지난 봄 대북 핵전력 시위에서 드러났듯이 잠재적으로 격퇴를 전제로 한 전략을 갖고 있다. 북한을 관여할 것인가, 격퇴할 것인가. 케넌의 낡은 논리가 새삼 던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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