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자호란…한명기 | 푸른역사
신년 벽두부터 ‘역사로의 여행’이 활기를 띠고 있다. 상황이 역사를 되돌아보게 하는 측면이 있다.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퇴행적 패권주의,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이 맞물리면서 한반도 주변 환경이 심상찮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역사 속 상황과 현재를 비교하려면 비교대상 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따져보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역사에서의 전문지식을 갖고 작금의 국제정세까지 재단하려고 한다면 무리가 따른다. 막연하게 “역사에서 교훈을 찾자”고 외친다면, 자칫 견강부회(牽强附會)의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1894년 갑오경장과 함께 최근의 역사열풍을 주도하는 책 중의 하나인 <역사평설 병자호란 1·2>를 다시 읽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주지하다시피 병자호란은 인조가 신하들과 함께 무력을 동원해 왕권을 획득한 뒤 명·청 교체기의 국제정세 흐름을 무시한 데서 비극의 싹이 있다. 객관적 정세읽기의 실패와 국방·정보력의 부재, 통치자의 리더십 부재 및 지도층의 무능이 어우러져 빚은 민족사의 비극이 병자호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의 요체다. 지도층은 물론 전체 인구의 10%에 달하는 50여만명에 가까운 백성들이 청나라로 끌려가는 비극으로 귀결됐다. 역사학자의 역할은 이를 다시 내보여주는 것으로 족하다. 문제는 저자 스스로 이 책의 서두에 적은 바, ‘G2시대의 비망록’이라는 의미를 확대 부여한 데서 비롯된다.
중국이 굴기(屈起)하고, 미국의 리더십이 의심받는 작금의 국제정세와 우리가 양자택일을 강요받았던 명·청 교체기의 국제정세와 확연히 다르다. 강대국 간의 ‘교체기’는커녕 미국 주도의 압도적인 세계질서에서 중국이 고개를 들기시작한 단계에 비유해야 마땅하다. 중국을 명을 위협한 후금에 비유하는 것도 망설여질 정도다. 또한 중국의 경제력·군사력이 과연 동아시아의 판도를 뒤흔들 정도로 위협적인 지 검증이 먼저 있어야 한다. 중국의 국방예산은 최근 10년 간 연평균 10%의 상승률률을 보이면서 지난해 1661억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의 23.4% 수준에 머문다. 해군력은 일본을 제압할 수준도 되지 못한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미국과 중국이 명·청 관계 처럼 제로섬의 관계도 아니다. 작년 11월 현재 중국은 1조3167억달러의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 미·중은 서로 뗄래야 뗄 수도 없는 관계다. 저자의 지적대로 ‘끼인 약소국’의 입장에서 복수의 강대국 모두와의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고도의 외교능력을 보여야 한다는 점에서는 동의한다. 한국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건, 결정적인 순간 미·중이 각각 자국의 이해 또는 이해가 겹치는 선택을 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병자호란 당시의 국제정세를 현실에 대입하는 것은 북한의 존재 때문에 결정적인 한계를 지닌다.
병자호란 당시의 숭명주의자들 못지 않게 한·미동맹 지상주의자들이 많은 것은 아픈 사실이다. 하지만 과거처럼 99 대 1의 비율도 아니다. 국민이 선택할 여지가 있다. 또 여기서 남북관계는 어떻게 위치시켜야 하는 것인가. 저자는 황준현의 <조선책략>을 원용해 한국은 미국과의 관계를 견고히하되 중국, 일본, 러시아와의 우호 및 협력을 다질 수밖에 없다는 두루뭉술한 결론을 제시한다. 한 종편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을 외세의 개입을 불러오는 ‘숙주’라고 보면서 제한된 현실의식을 드러냈다. 외세의 개입은 남과 북의 긴장이 높아지면서 야기될 수있는 상황이다. 숙주가 있다면, 남도, 북도 아닌 남북관계의 실패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역사학자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책의 성공에 기대어 ‘G2시대의 비망록’이나, ‘북한 숙주론’과 같은 전망을 내놓는 것은 정확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역사의 영역을 뛰어넘으려면 혼자 힘으로는 안된다. 여러분야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는 통섭적 노력이 필요하다. 역사에서 성급한 결론을 얻기 보다는 역사적 사실을 그 자체로 읽는 것이 때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큰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김진호 선임기자 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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