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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의 세계읽기]]마이크 플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퇴진이 시사하는 두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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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no's 2017. 2. 14.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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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밤 전격적으로 사임한 마이크 플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오른쪽)이 지난 달 31일 백악관 루즈벨트룸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사이버안보 관련 회의를 하기에 앞서 퇴역장군 케이스 알렉산더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3성 장군으로 국방정보국(DIA) 국장을 지낸 플린은 퇴역 3년만에 ‘정치군인’으로 변신해 백악관에 입성했지만 최단기 국가안보보좌관의 불명예를 안고 퇴진했다. 워싱턴/AP연합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취임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결정된 마이크 플린의 사임은 전·현직 고위당국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살피는 미국 공직사회의 엄격한 문화를 새삼 부각시킨다. 3성장군 출신 플린의 사임은 동시에 미국판 ‘정치군인’의 말로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전·현직 고위당국자의 통화내용까지 체크하는 시스템이 적발한 ‘잠재적 이적행위’
 플린의 불명예 퇴진을 야기한 것은 그가 지난 해 12월 세르게이 키슬략 러시아 대사와 가진 통화였다. 플린이 키슬략 대사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면 오바마 행정부가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뒤 단행한 대러제재가 풀릴 것임을 암시했다는 것이 의혹의 핵심이었다. 미국 언론 보도가 잇따르자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거짓해명을 해 펜스 부통령이 여러 방송에 출연해 플린을 적극 옹호하게 만들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뿐 아니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당선을 위해 개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미국 정보당국의 보고를 듣고 이와 관련해 별도의 제재를 가했다. 플린은 통화에서 이 제재도 거론한 것으로 전해졌다.

 ■관련법 위반 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정직하지 못한 사후 태도
 이 사안은 사법적으론 미국 독립 직후인 1799년 제정된 로건법(Logan Act) 위반 사항이다. 로건법은 민간인이 미국의 적대국과 분쟁사안을 논의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단순히 의논만 하더라도 범법이 된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번도 적용되지 않았다. 통화내용 역시 두루뭉수리해서 이 사안만 놓고 굳이 취임 25일 밖에 안된 국가안보보좌관을 경질하지 않아도 무방했을 것이라는 게 뉴욕타임스의 분석이다. 하지만 플린은 펜스 부통령에게 처음엔 거짓말을 했다가, 문제가 커지자 자신의 ‘불충분한 기억력’ 만을 탓해 화를 키웠다. 범법사실 자체 보다 정직하지 못한 태도가 죄를 키운 셈이다. 취임과 동시에 막무가내 식 돌출행동으로 안팎에서 비난을 받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이 부분에선 단호했다.
 
 ■미국 사법당국이 총동원된 사임압박
 플린의 사임에는 미국 사법당국이 총동원됐다고 봐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플린의 통화내용은 연방수사국(FBI)에 의해 고스란히 확보됐고, 사법당국은 이를 토대로 문제제기에 나섰다. 샐리 예이츠 전 법무부장관 대행은 지난 달 백악관에 “플린이 러시아의 협박에 취약할 수도 있다”고 공식경고했고, 제임스 클래퍼 전 국가정보국장과 존 브레넌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이를 우려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13일 전했다. 예이츠 전 장관은 트럼프의 반 이민 행정명령을 반대했다가 즉각 해고됐던 인물. 트럼프는 그를 해고했지만, 그의 충고까지 무시하지는 않았다.
 미국의 퇴역장성들은 전역 이후에도 행동이 자유롭지 않다. 퇴임 뒤 외국 방산업체에 취직해 F35전투기를 비롯한 천문학적인 액수의 무기 세일즈맨으로 변신, 과연 어느나라 군인이었는지 헛갈리게 하는 한국과는 달라도 많이 다른 문화다.
 플린과 관련된 또다른 의혹도 러시아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가 2015년 러시아 국영 영어방송인 러시아 투데이 창간기념행사에 초청을 받아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당시 러시아 측으로부터 돈을 받았을 것이라는 의혹이다. 사실이라면 퇴역장교들이 연방의회의 허락 없이 외국 정부로부터 돈을 받는 것을 금한 연방헌법의 보수조항 위반이 된다.

 ■퇴역장군의 수입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미국 정보기관
 이를 잘 알고 있을 플린은 러시아 방문 전 자신이 한때 수장으로 있었던 국방정보국(DIA)에 방문사실을 알리고 출국 전 DIA 요원들로부터 안보 브리핑을 받았다. 하지만 법이 정하는 공식서류를 제출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기념행사장에서 플린이 푸틴 대통령 바로 옆에 앉은 사진이 공개되는 등 방문기간의 자세한 행적이 알려지면서 DIA 간부들은 플린이 러시아 방문의 성격에 대해 더 자세히 보고했어야 했다고 지적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당시 DIA의 빈센트 스튜어트 국장은 플린의 러시아 방문 다음 달, “DIA 요원들은 대선기간 동안 외국 정보기관 요원들에서 브리핑을 해서는 된다”는 지침(memo)을 내렸다. 제임스 쿠들라 DIA 대변인은 타임스에 스튜어트 국장의 지침이 플린의 러시아 방문과 무관치 않음을 인정하면서 “하지만 전직 고위 당국자들과 DIA 요원들이 국내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한 광범위한 조치였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플린이 트럼프 당선의 1등공신 가운데 한명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난 해 7월에는 트럼프의 러닝메이트로 검토됐으며, 플린도 부통령 지명에 필요한 서류를 캠프에 제출하면서 “공화당 부통령 후보자로 지명된다면 기꺼이 수락하겠다”고 한 바 있다.
 같은 군인출신이지만,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트럼프가 당선 뒤 처음 만나 지명을 받았지만, 플린은 선거유세 초반부터 트럼프 캠프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해왔다.

 ■‘정치군인’의 덧없는 말로
 DIA 국장 재직시절 오바마 행정부의 대 테러 정책에 날선 비판을 해왔던 그는 당시 한이 맺혔었는지 유세장에서 ‘정치꾼’으로 돌변했다. 공화당 전당대회장에서는 주요 연설자로 등장해 “오바마의 공허한 연설과 잘못된 수사에 신물이 난다. 세계로 하여금 미국의 말에 대해 어떠한 존경심도 갖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미국의 힘을 두려워하게도 하지 못한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플린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강조하면서 관중들과 함께 “U-S-A! U-S-A!”를 외치기도 했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에 대해서는 “내가 힐러리가 한 짓의 10%만 했더라도 지금 감옥에 있을 것”이라면서 “그녀를 가둬버려라”고 선동하기도 했다.
 현역 시절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할 수는 있다. 하지만 선거판에서 정치꾼으로 돌변해 원색적인 언어로 군중을 선동하는 것은 전형적인 ‘정치군인’이라고 하지 않을 수없다. 오죽하면 자신이 수장으로 있었던 DIA가 전·현직 간부들에게 “선거판에 끼어들지 마라”고 특별지시를 내렸겠는가. 그 말로는 역사상 처음으로 최단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라는 불명예로 귀결됐다.                                        김진호 선임기자 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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