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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침을 열며

이완용에게 배워야 할 점

by gino's 2011. 11. 27.

아침을 열며

2007년 4월2일 타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이리 오랫동안 지체된 책임의 99%는 미국, 특히 미국 의회에 있다. 해머가 등장하고 최루탄이 터졌다고 해도 한국 국회가 비준안 처리를 놓고 고민한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지나온 시간은 다가올 시간의 전조를 담고 있다. 지난해 봄까지 워싱턴 취재현장에서 협상 후반부와 타결과정, 이후 미국 사회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FTA를 대하는 한·미 국회의원들의 자세였다. 처음부터 한·미 FTA를 순수한 경제논리가 아닌, 안보논리와 뒤섞었던 국산 금배지들은 시종 한·미 관계의 큰 틀에서 접근했다. 수백, 수천개의 조항에 걸린 국민 개개인의 이해관계에는 대범했다.

미국 국회의원들은 철저하게 경제논리로 무장했다. 지역구민의 이익이 조금이라도 훼손되거나, 덜 보장받는다면 가차없이 태클을 걸어왔다. 지역구가 네브래스카인 벤 넬슨 상원의원은 당시 이태식 주미대사를 만나 “쇠고기 없으면 FTA 없다”고 공개적으로 으름장을 놓았다. 미시간주의 샌더 레빈 하원 무역소위 위원장은 한·미 FTA 청문회장에서 “한국은 (협상) 처음부터 미국산 제품에 ‘경제적 철의 장막’을 쳐왔다”면서 자동차 시장의 추가 개방을 요구했다.
양국이 다른 점은 또 있다. 한국 국회가 변화한 환경에 초연했던 반면에 미국 의회는 발빠르게 적응하고 그 결과를 협정문에 반영했다는 점이다. 2006년 중간선거에서 승리한 민주당이 FTA의 노동·환경 관련 규정을 대폭 강화한 신통상정책을 협정문에 새기게 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파동 끝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오자 이번에는 자동차를 걸고 넘어졌다.

그사이 한국 국회에서 FTA는 어떻게 다뤄졌을까. 국회 특위 회의장은 늘 비어 있다시피 했다고 한다. 소신파 의원 몇 명이서 고군분투할 뿐 대부분은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면서 무슨 위원회니, 특위니, FTA포럼이니 간판을 바꿔 달고 워싱턴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그들의 말 속에 ‘국민’은 없었다. 쇠고기와 쌀, 약값 등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쟁점에 통 큰 자세를 보였다. “FTA가 타결되면 한·미 동맹의 결합력이 질적으로 제고되는 계기를 맞을 것이다”라는 정도의 말을 내놓았다. 미 의회의 조속한 비준을 구걸하는 식이다. 1등석 비행기를 타고 건너온 의원들에게 미국 측과 어떤 의견을 나눴느냐고 물어보면 “폭넓은 의견을 교환하고 이해를 넓혔다”는 식의 하품 나오는 답변이 돌아왔다.

백 번 양보해서 한국 경제에 새로운 추동력을 불어넣기 위해 FTA가 필요했다고 치자. 하지만 미국시장은 2006년 FTA 협상을 시작할 때보다 한국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할 만큼 왕성한 소비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버락 오바마는 취임 직후부터 꾸준하게 박정희 시대를 방불케 하는 ‘수출입국’을 강조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이 물건을 사줘서 살았으니, 이제 내수에 치중하면서 미국 상품을 사라고 아시아 각국을 윽박지르고 있다. 대통령 후보 시절 한·미 FTA를 반대했던 그가 변심한 것도 수출증진을 위해서다.

맹목적 FTA 지지론자들이 그토록 닮고 베끼고 ‘경제합방’을 하고 싶어했던 선진 경제 시스템 역시 실패했다. 월가의 돈놀이에 스스로 제 발등을 찍은 미국 시스템은 미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에 암운을 던지고 있다. 아직도 회복되지 못했다. 시간적인 여유를 두고 미국경제, 세계경제의 회복세를 지켜보며 FTA 비준을 다뤄도 나쁠 것이 없었다. 미국 의회는 4년반을 끌었는데, 우리는 왜 1년도 끌지 못하는가.

맹목적 FTA 지지론자들에게는 도무지 변화의 독해능력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월가를 ‘점령’하고 있는 시위대가 물대포나 맞을 사람들로 보이는가. 굳이 대통령이 나서 ‘자존심’ 운운할 필요도 없었다. 최소한 1~2년 동안 협정안 검토기간을 늘리면서 그사이 투자자-국가소송제를 비롯한 독소조항들을 재협상하거나 순하게 만들었어야 했다. 그걸 두고 이제 막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일본이 나선 만큼 서둘러야 한다는 외교통상부의 논리는 또 뭔가. 기존 가입 9개국과 1 대 9로 벌일 협상이 몇 달 만에 타결될 것이라는 착시를 정말 믿으라는 말이었나.

나는 한·미 FTA를 을사늑약과 동일시하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을사늑약의 주인공만도 못한 시류의 독해능력은 문제라고 본다. 구한말 조선에서 가장 영어를 잘하는 지식인의 한 명이었고, 탁월한 외교관이었으며, 시대의 흐름과 개방의 중요성을 뼛속 깊이 이해하고 있던 이완용이 택한 것은 망해가는, 벽에 부딪힌 나라가 아니었다. 러시아를 꺾고 욱일승천의 기세로 커가던 일본이었다. ‘나랏일’로 밥을 버는 정치인과 관료들은 완력으로 FTA 비준안을 통과시켜놓고 슬금슬금 국민의 눈치만 보지 마시라. 뒤늦게나마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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