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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아침을 열며

지금은 평양만 울고 있지만…

by gino's 2011. 12. 26.

아침을 열며 

아침부터 고3 교실이 뒤숭숭했다. 1979년 10월27일. 태어나서 그날까지 한 명밖에 없었던 남한 대통령이 죽었다. 예비고사가 열흘 정도 남았는데 “전쟁이 난다” “올해 대학시험이 없어진다”는 낭설이 나돌았다. 흑백TV 화면 속 박정희의 장례행렬이 거리를 지나는 동안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 눈물의 일정부분은 또다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하나의 연대기가 끝났다. 북한의 남침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최전방의 정예사단장이 서울로 병력을 빼돌려 쿠데타 놀음에 숟가락을 얹을 정도의 여유 또는 무모는 있었다.

북한 평양시의 주민들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 AP연합뉴스 | 경향신문 DB
 
점심시간이었다. 몹시도 후덥지근했던 날로 기억한다. 1994년 7월8일. ‘김일성이 죽었다’는 뉴스 특보를 듣고 황망하게 회사로 발길을 돌렸다. 역시 태어나 유일했던 북한 주석이 죽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정신없이 신문지면을 메우다가 어느 날인가 약간 한가해지고 나서야 또 하나의 연대기가 지났다는 느낌이 찾아왔다. 서울 강남에선 라면 사재기 현상이 벌어진 걸 보면 전쟁의 공포도 여전했다.

김정일이 죽었다. 두차례의 죽음에 비하면 싱거운 기분이 들 정도다. 임박한 전쟁의 공포도, 사재기 소동도 없다. 2008년 추석 직전,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에 비해서도 긴장감이 덜했다. 이번에는 다행히 정부의 대응도 조심스럽다. 지난 20일 발표된 정부의 담화문은 북한 주민들을 위로하고 북한이 조속히 안정을 되찾기를 기대하는 온건한 톤을 유지했다. 하지만 차분하게 대응한다고 정부가 할 일을 다하는 건 아니다. 정부 담화문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한반도 평화였다. 하지만 담화문은 한반도의 평화가 흔들리지 않도록 ‘상황을 철저히 관리해나갈’ 파트너로는 ‘우방국’만을 들었다. 지난 정권에서 남북한 지도자가 두 번 만나고 두 번의 공동선언을 발표했지만 공교롭게 북한에서 21세기 들어 가장 큰 변고가 발생한 지금, 남북 간 접촉면은 없다. 접촉점이라도 있다는 증거마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한반도 평화를 위해 노력할 주체가 남한과 단수의 ‘우방국’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 역시 한반도 안정을 가장 우선적으로 강조했다. 하지만 한반도의 안정 다음으로 꼽을 법한 두번째 정책 목표는 4국4색이다. 국은 ‘김정일 이후’ 북한 체제가 주도권을 잃게 될 경우 핵무기와 미사일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가 확산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은 대규모 난민 유입과 북한에 반중 성향의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경계한다. 러시아는 남북한과 러시아를 잇는 가스관 건설이나 철도연결 등의 경제적 이익에, 일본은 납치자 문제 해결이라는 정치적 이익에 초점을 맞춘다. 불행히도 남한의 두번째 정책목표는 보이지 않는다. 김정일 이후 북한의 장래만 불투명한 게 아니다. 남한 정부의 대북정책 역시 예측하기 어렵다. 천안함·연평도 악재가 인민군 통수권자의 사망으로 엷어졌다지만, 지난 4년간 순도 100%에 가까운 한·미 공조 덕에 분쟁 당사국으로서 남북관계의 특수성이나 남한의 정책적 차별성은 흐려졌다.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다”(이명박), “전략적 인내”(오바마)의 경우처럼 서로 정책적 목표는 물론 정책용어까지 비슷해졌다. 

지난 몇 년 동안 북한의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천안함, 연평도 등 한반도에서 굵직한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남한은 대북정책을 미국과 협의 또는 아웃소싱했고, 미국은 중국의 역할을 기대하는 2차 아웃소싱을 했다. 이 순환고리를 끊은 건 늘 중국이다. 중국은 1, 2차 핵실험 직후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에는 동의했지만 거의 예외없이 “우리의 대북 영향력은 제한적”이라고 실토한다. 돌고돌아 결국 남북이 마주앉아 나눌 이야기가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갔다가, 중국을 경유해 다시 원점으로 회귀하는 기현상을 보여왔다. 지난 19일 남한 대통령의 전화를 받을 시간이 없었던 후진타오 주석이 다음날 베이징의 북한대사관으로 조문을 간 것을 탓할 필요는 없다. 남북한 등거리 외교가 그들의 선택일 뿐이다.

장기 집권한 남북 수뇌부의 죽음만을 놓고 보면 분단의 역사는 이제 세번째 변곡점을 막 돌았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김정일의 사망사실을 발표한 시간은 지난 19일 정오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통화한 것은 두 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때였다. 다음번 한반도에서 변고가 발생했을 때 남한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기 전에 먼저 북한 지도부와 통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반미친북이 되는 건가? 남북이 사안을 먼저 논의한다고 문제 삼을 우방이면 우방이 아니다. 조선중앙TV가 전하는 지금 평양은 통곡의 바다다. 화면 속의 평양시민들은 울부짖으며 이 엄동에 맨손으로 땅을 친다. 찬바닥에 주저앉거나 무릎을 꿇은 채 울고 있다. 지금은 ‘평양’만 울지만, 계속 등을 돌리고 있다가는 서울과 평양이 함께 우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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