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선(America First)인가, 미국 나중(America Last)인가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고 하지만 짖는 개가 더 나쁠 수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외정책이 야기할 것으로 예상되는 부메랑효과를 적확하게 표현한 한 줄이다. 전형적인 사업가답게 거래를 즐기는 트럼프 대통령은 댓바람에 상대를 위협하는 말을 두서 없이 내놓는다. 언론이 사실 확인에 들어가거나, 실제 상황에 부딪히면 얼버무리거나 둘러대고, 거짓말로 봉합한다. 때로는 자신이 한 말과 반대되는 이야기도 태연하게 내뱉는다. 이른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대외정책은 그러나 많은 경우 미국의 국익과 반대되는(America Last) 결과를 낳고 있다.
지난 6월26일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사설의 ‘라틴아메리카에서는 트럼프가 무는 것보다 짖는 것이 더 나쁘다(Trump’s bark is worse than his bite in Latin America)’는 제목이 짚은 트럼프 대외정책의 결과다. 미국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다면 나라 마다 대안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개정 협상을 앞둔 멕시코는 벌써 새로운 무역 파트너를 찾고 있다. 트럼프가 취임 사흘만인 지난 1월23일 NAFTA 재협상을 공론화하자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은 다음날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지만, 멕시코의 국익을 지킬 것”이라고 되받았다. 이어 트럼프가 취임 첫날 탈퇴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다른 가입국들과 양자간 무역협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멕시코와 캐나다는 오는 8월16일 개시되는 NAFTA 개정협상에 앞서 미리 팀웍을 맞추고 있다. 지난해 상품교역에서만 632억달러에 달한 멕시코와의 무역역조를 개선하겠다는 것이 트럼프의 목표이지만 협상 결과 어느 쪽이 더 크게 웃을지는 불확실하다. 트럼프의 장담대로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는 없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아직 협상 개시까지 시간이 있지만, 한·미 FTA 개정협상 역시 일방적인 결과는 없을 것이 분명하다.
■크게 짖지만, 몽둥이는 작더라
지난 6월 트럼프는 오바마 행정부의 대쿠바 화해정책을 “없애버리겠다”고 밝혔지만, 정작 마이애미 연설에서 발표한 내용은 오바마 정책의 계승도, 백지화도 아닌 어정쩡한 것이었다. 어디 라틴아메리카에만 해당되는 말이겠는가.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지난 2월 트럼프의 TPP 탈퇴를 논리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교역문제로 중국을 어렵게 하려면 미국이 중국 주변의 아시아·태평양 국가들과 경제동맹을 맺어 미국 스타일의 무역구조를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프리드먼은 “그게 바로 TPP였다”면서 “트럼프는 아마 TPP협정문을 읽어보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멕시코가 미국을 상대로 무역흑자를 거두는 비결은 저렴한 인건비다. 인건비가 저렴한 중요한 이유는 멕시코의 노동 및 환경기준이 낮기 때문이다. 그것을 미국 수준으로 높이려던 수단이 TPP였는데 그걸 탈퇴했으니 방법이 없어졌다는 지적이다.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는다는 정책도 ‘제눈 찌르기’다. 9·11 테러 직후 미국이 멕시코 국경을 잠시 닫은 결과 미국 자동차 공장들은 부품공급이 안돼 가동을 멈춰야 했다. 저려한 부품을 미국에서 조립, 생산해 그나마 일본과 중국에서 경쟁이 가능했는데 그걸 스스로 막겠다는 자충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2004년 아시아 쓰나미 사건에서 입증된 것처럼 기후변화는 미국 국가안보를 취약하게 하는 위험요소다. 그런데 트럼프는 과감하게 파리기후변화협정을 탈퇴했다. 유엔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이주민과 난민만 6500만명에 달한다. 그런데 트럼프가 무엇을 했던가. 국무부 예산을 30% 깎고 개도국 원조를 상당부분을 없앴다. 조만간 더 많아질 이주민과 난민들은 미국에 부메랑이 될 수 밖에 없다. 특히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한 이주민과 난민은 2007년 이후 미국의 16개 정보기관을 아우르는 국가정보국(DNI)의 연례 안보위협평가보고서에서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굴뚝산업을 보호하겠다는 트럼프의 단견이 미국 국가안보의 위험지수를 높인 꼴이다.
트럼프가 별 실속 없이 짖어댄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인가. 시리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러시아와 협조하겠다는 트럼프의 정책 역시 미국 국익과 반대로 가는 행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시리아 정책은 이슬람국가(IS) 파괴 보다는 친러시아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비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시리아에서 러시아의 친구들은 이란과 헤즈볼라 및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서 달려온 시아파 용병들이다. 하나같이 미국과 적대관계에 있는 이들과 미국이 파트너가 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제사회, ‘트럼프의 미국’ 외면하고 제 갈길
아무리 독하게 트럼프를 비판해도 더 이상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이미 익숙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혼란의 씨앗은 반드시 결과를 낳는다.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 18일 포린폴리시 기고문 ‘트럼프의 무능력이 지구촌에 야기한 결과들’에서 취임 6개월이 지난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이 남긴 결과를 두가지로 요약했다. 우선 대통령이 세계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참모들이 대통령의 무지를 보충할 요령이 없다면 심각한 정책적 실수를 범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TPP 탈퇴를 콕 짚어서 아시아에서 미국의 입장을 흔들고, 중국의 영향력을 더 키워주고, 미국 경제에 조금도 도움이 안되는 결정이라고 진단했다. 파리협정 탈퇴는 미국인을 과학적 진실을 부인하고 모래밭에 머리만 묻는 무식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중국과 큰 거래로 북한 문제를 풀겠다는 장담 역시 중국이 북한 문제를 풀지 않을 것임을 알아채지 못한 과실이었다고 지적했다.
두번째는 미국 관료들이 팔푼이(underhead)라는 사실을 간파한 나라들은 면전에서는 공손하게 머리를 끄덕이지만, 미국의 의도와 상관 없이 자신들의 촉에 따라 움직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월트는 세 나라를 예로 들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트럼프가 첫 해외방문을 다녀간 뒤 곧바로 카타르와 외교분쟁을 시작했고, 이스라엘은 트럼프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사우디와 이스라엘은 미국을 속이는 데 정평이 난 나라들이다. 월트가 세번째로 꼽은 나라는 생뚱맞게도 한국이다. 아직 북한과 대화를 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미국의 입장을 거슬러 대북 대화제안을 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을 술 취한 코뿔소에 비유한 월트의 유머가 자못 그럴듯하다. 미국은 여전히 강한 국가이기에 우방국이건 적대국이건 조심스러워할 수밖에 없다. 술 취한 코뿔소와 한방에 있다면 행동을 조심할 수밖에 없지만, 적어도 그 코뿔소에게 지정학적인 전략과 관련한 조언을 듣거나 의논상대로 여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풍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