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언론 대북 선제타격 시나리오 경쟁적 보도
미국 언론은 지난 주말 한반도 전쟁시나리오를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명령만 내리면, 장거리전략폭격기 B-1B랜서가 괌기지에서 출격해 북한의 미사일 기지들을 선제타격할 것이라는 보도(NBC방송 9일)에서부터 전투기와 함께 구축함에서 토마호크 미사일이 동원될 것(뉴욕타임스 11일)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문제는 익명의 전·현직 군사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한 미국 언론의 보도가 얼마만큼 공신력이 있느냐는 점이다.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압도적인 재래식·핵 전력을 동원하면 북한을 석기시대로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떤 대북 선제공격도 북한의 반격을 야기함으로써 한반도와 주변을 초토화하는 재앙으로 이어진다. 1990년대 말 대북 선제공격의 원조 격인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이 북한의 한국 보복공격을 이유로 반대(10일 뉴욕타임스 인터뷰)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무턱대고 선제타격론을 주장하는 것은 한반도 거주민 입장에서 지독하게도 유감이 아닐 수없다. 전쟁 시나리오를 전하는 언론일수록 그 후과에 대해서는 충분히 진지하지 않다.
미국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는 SNS 상에서 더욱 증폭된다. 기자가 지난 주말 개인적으로 SNS 상에서 접한 가장 충격적인 소식은 두가지다. 우선은 한 일간지 기자의 어린 아들이 전화를 걸어와 다짜고짜 “아빠, 집에 일찍 들어요”라며 훌쩍거렸다고 한다. 이유를 묻자 아들은 “전쟁 난데요”라고 답했다. 한 재미 교포는 페이스북에 “지난 겨울 광화문으로 나왔던 수백만명의 촛불 시민들은 어디에 갔느냐. 지금 전쟁이 난다는 데 다시 거리로 나와 ‘전쟁만은 안된다’고 시위를 해야하는 것 아니냐”고 촉구했다. 한·미 양국의 평범한 시민들에게까지 전쟁의 공포를 설파한 것의 기원을 따지고 들어가면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군부의 원색적인 충돌위협에 원죄가 있다. 8일(현지시간)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 발언에서 시작해 11일 “(대북)군사적 해법 준비·장전 완료” 발언으로 닫은 트럼프의 직설적인 엄포와 ‘괌 포위 공격 및 남반부 불바다’로 되받은 북한이 기름을 부은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장마철에 폐수 버리듯이 쏟아낸, 미국 언론의 전쟁보도의 책임 역시 적지 않다.
백악관 주인이 누가 되건 미국 본토가 위협받게됐다면 당연히 위협을 제거해야 한다. 그 핵심은 북한이 미국을 위협할 능력을 갖추었느냐는 것이다. 바로 이점에서 지난주 한반도 보도에서 이니셔티브를 쥔 것은 단연 워싱턴포스트였다. 특히 국방정보국(DIA)의 7월28일자 비밀보고서를 인용해 북한이 소형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능력을 이미 갖췄다고 전했다. 워싱턴포스트가 8일(현지시간) 보도한 주요 팩트는 두가지다. 우선은 국방정보국(DIA)의 7월28일자 보고서 내용이라면서 “북한이 ICBM급 미사일을 포함해 탄도미사일에 적재할 (소형)핵탄두를 이미 생산했다고 평가한다”고 전했다. 문제는 워싱턴포스트가 문제의 DIA 비밀보고서를 입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입수는 고사하고 직접 접하지도 못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같은 기사에서 이러한 보도의 근거로 ‘(취재원이) 우리에게 읽어준 보고서 요약본(in an excerpt read to The Washington Post)’을 들었다.
■익명의 취재원을 들어 “북한 핵탄두 최대 60개 보유”보도도
워싱턴포스트가 전한 두번째 팩트는 ‘또 다른 첩보 평가(another intelligence assessment)’를 인용해 “북한의 핵탄두가 최대 60개에 이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지난 7월3일 연례 보고서에서 밝힌 10~20개(2017년 1월 기준)와 거리가 먼 내용이었다. 또 지그프리드 헤커 스탠포드대 교수가 추산한 20~25개와도 큰 차이가 난다. 기존 평가에서 갑자기 최대 6배가 늘어난 데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다짜고짜 익명의 첩보평가를 인용한 이 내용은 경향신문을 포함한 일부 한국언론조차 주목하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워싱턴포스트가 지난 달 25일 자에서는 역시 DIA의 ‘새로운 평가(A new assessment)’를 근거로 북한의 핵탄두 적재 ICBM의 완성시기를 “빨라야 내년”이라고 보도했었다는 점이다. 불과 2주만에 DIA의 평가가 확 달라지려면, 7월28일 북한 화성-14형의 시험발사가 성공했어야 한다.
서주석 국방부 차관은 13일 KBS에 출연해 “북한이 탄도미사일 기술의 최종 관문인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확보하는 데 시점을 명시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1∼2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워싱턴포스트 역시 문제의 8일 기사에서 화성-14형 시험발사 비디오를 분석한 일부 전문가들의 평가를 인용, 미사일이 대기권에 재진입할 때 불이 나서 해체됐다면서 북한이 약점을 보완하는 시기를 “내년 말”로 보고 있다는 관측을 함께 전했다. 결과적으로 미확인 정보로 여론몰이를 한 꼴이다.
어찌보면 북한이 소형 핵탄두로 미국 본토를 타격할 ICBM을 이미 만들었는지, 완성이 임박했는지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 전세계 미사일전문가들의 예상을 뛰어넘으며 급속하게 발전하는 북한 미사일 기술로 미루어 완성시점이 임박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워싱턴 포스트가 쏘아올린 불화살이 트럼프의 같은날 ‘화염과 분노’발언과 맞물리면서 급속도로 확산된 것 역시 사실이다. 미국 언론에서 한반도 전쟁 시나리오가 봇물터지듯 나오는 신호탄이 됐다. 특히 NBC방송은 복수의 전·현직 군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공격명령만 내리면 괌에 배치된 장거리 전략폭격기 B-1B 랜서가 대북 선제 타격에 동원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가 명령은 내리면 랜서는 물론, 미국이 보유한 육상·해상·공중의 전략핵무기 3종세트가 모두 동원될 수도 있다. 그중 극히 일부인 전폭기 기종을 ‘특종’이랍시고 보도하는 행태는 호들갑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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