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한·중·일 순방에 나선 조지프 던포드 미국 합참의장(왼쪽)이 14일 청와대 본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주일 가까이 북한과 미국 간에 사상 유례 없는 ‘말의 전쟁’을 치른 북한 핵문제가 13일을 기점으로 다소 사그라드는 분위기다. 적어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 관계 고위당국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근거로 했을 때 그렇다. 하지만 북핵 위협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북한이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 4기로 괌 주변 해역 30~40㎞를 포위사격하겠다고 명시한 15일이 다가오면서 폭풍 전야의 고요에 잠긴 인상이다.
■주목되는 틸러슨-매티스의 ‘전략적 책임’정책 발표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13일(현지시간) ‘우리는 북한의 책임을 묻는다’는 제목의 월스트리트 저널 공동기고문을 통해 대북입장을 내놓았다.두 장관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가 계속된 최근 몇달간의 상황을 ‘한국전쟁 이후 겪어보지 못한 수준’이라고 평가하면서 미국은 ‘전략적 인내’ 정책을 ‘전략적 책임(Strategic accountability)’이라는 새 정책으로 대체한다고 밝혔다. 대북 평화적 압력 캠페인을 하겠다면서 4가지 기본 목적을 공표했다. 우선 미국이 북한의 정권교체나 한반도의 급속한 통일에 관심이 없다고 분명히 했다. 주한미군이 비무장지대를 넘지 않을 것이라고도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온 북한 주민들에게 해를 입힐 의도가 없다고 밝혔다. 북한과 중국의 우려를 동시에 불식시키는 보장이다.
기고문은 그러나 “북한의 행동을 바꾸기 위한 수단으로 외교를 선호하지만, 이는 군사적 옵션으로 뒷받침된 것”임을 분명히 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한국 배치 및 한·미 합훈은 북한의 첨예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방어적 준비라면서 중국의 배치 반대는 비현실적(unrealistic)이라고 못박았다. 기고문은 특히 “미국은 북한과 기꺼이 협상할 것이라면서 북·미 협상은 북한이 선의의 협상신호를 보내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협상을 원한다는 성실한 신호는 도발적 위협과 핵실험, 미사일 발사 및 다른 무기 실험의 즉각 중단”이라고 강조했다. 한·중·일 순방 중인 조지프 던포드 미국 합참의장도 12일(현지시간) 전용기 기자회견을 자청, “전쟁 없이 이 상황에서 빠져나오길 기대한다”고 말을 보탰다.
틸러슨-매티스의 공동기고문은 지금까지 부분적으로 공개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강·온 태세를 가장 종합적이면서도 정제된 언어로 제시했다. 다만 북한이 응하지 않을 것에 대비한 듯 공식성명이 아닌, 신문 기고문 형식을 취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트럼프가 ‘장전 완료’됐다고 허풍을 떤 군사적 해법을 강조하면서도 방점은 분명 외교적 해법에 찍었다. 비록 대량살상무기(WMD) 뿐 아니라 무기 실험 중단까지 담았지만 대화의 조건도 분명히 했다.공동기고문은 ‘정권의 종말과 북한 주민의 파멸’을 경고한 지난 9일 매티스 장관의 공식성명에 비해서도 우선순위의 이동이 읽힌다. 매티스는 당시 성명에서 “국무부가 외교적 수단을 통한 해결에 최선을 다하겠지만 (한·미·일)연합전력이 지구상에서 가장 정교하고 잘 훈련됐으며 강력한 방위력과 공격력을 갖고 있다”면서 북한의 잘못된 행동이 정권의 종말과 주민들의 파멸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었다.
북한이 맞대응을 한다면, 틸러슨-매티스의 공동기고문에 역시 조선중앙통신이나 노동신문을 통한 언론 기고문으로 응답해야 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강조해온 북한의 어법에도 맞는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미국은 자멸을 원하는가’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한·미가 21일 시작하는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을 비난하면서 미국이 심사숙고할 것을 경고했다. 하지만 미국 행정부 차원의 대북태세 천명에 대한 답은 아니었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답을 기다리는 동안 지난 11일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을 통해 “대화와 담판이라는 큰 방향을 견지하자”고 제안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적극적인 중재 여부가 주목된다. 북한의 도발 중단을 앞세웠지만, 미국이 신문기고문 형식으로나마 최소한의 성의를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공동기고문이 밝힌 북한 정권교체 및 급속한 통일 추진 제외등 4개 조건은 북한은 물론 중국의 우려를 해소해준 것이라는 점에서 이제는 중국이 움직일 계제임을 확인케한다.
그러나 중국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유관국들의 대화를 강조하는 수준을 넘어서지 않고 있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4일 정례 브리핑에서 “조속한 대화와 정치, 외교수단으로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는 촉구성 발언만 내놓았다. 러시아 역시 비슷한 입장이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13일(현지시간) 로시야1 TV 인터뷰에서 “한반도 사태가 무력충돌에 아주 가까이 가 있다”면서도 대화를 촉구하는 선에 머물렀다. 한·미를 상대로 중국이 제안한 쌍중단(북한의 핵실험·탄도미사일 발사와 한·미 합훈 중단)을 받아들이라는 입장도 여전하다. 한반도 사안은 동북아 공동의 현안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한발 떨어져 있는 한, 실질적 중재역할은 기대할 수없다.
북핵 위협은 늘 외교적 해법과 군사적 해법 중 선택의 문제이다. 이중 외교적 해법은 20여년간의 북·미 양자회담이나 다자회담이 모두 결실을 맺지 못함에 따라 심각한 피로현상을 보여왔다. 군사적 해법은 아직 동원된 적이 없다. 북한이 내외에 공언한대로 괌 주변 해역 또는 제3의 장소에 미사일을 발사한다고 해도 당장 한반도가 전면전에 돌입하는 것은 아니다. 국지충돌에 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없다. 하지만 미국 역시 사드를 동원한 북한 미사일 요격과 함께 모종의 보복행동에 착수하게 될 것이고 이것이 우발적인 충돌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조선중앙통신은 14일 오후 현재 “괌포위사격 방안을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에게 보고할 것”이라는 미래형으로 입장을 밝혔다.
물론, 위기국면을 최대한 잘게 썰어 단계적으로 위기를 증폭시켜온 북한의 벼랑끝전술로 보면 자신들이 공언한 15일 당일에나 모종의 입장을 내놓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없다. 북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핵무기의 소형화·경량화에 성공했다고 밝힌 3차 핵실험 두달 뒤인 2013년 4월4일에도 “우리 혁명무력의 무자비한 작전이 최종적으로 검토, 비준된 상태 에 있음을 백악관과 펜타곤에 통고한다”고 경고한 바있다. 당시에 비해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능력은 대폭 개선됐다. 이번에는 화성-12형의 궤도와 탄착점까지 밝혀 놓았다. 김정은이 어떤 결정을 할 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어떤 결정을 하건, 그 ‘재앙적 후과’는 북한도 같이 감당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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