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6차 핵시험을 한 9월3일 도쿄 시내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모습이 보이는 대형 TV화면 앞을 한 행인이지나가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나치게 요란한 일본의 대피훈련, “아베의 정치적 노림수 아닌가”
“미사일 발사. 미사일 발사. 분명한 미사일 발사(실제상황). 안전한 건물이나 지하로 대피하세요.” 한 나라는 도가 지나쳤다는 지적이 제기될 만큼 요란하게 대비하고 있다. 일본이다.지난 9월1일 오전 9시. 일본 홋카이도현의 작은 마을 타키카와.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알리는 비상사이렌이 울리자 100여명의 남자들이 거리의 주민들을 대피소로 안내했다. 마을 농구장 바닥에는 푸른색 비닐이 깔려 있었다. 주민들은 모두 양손으로 머리를 감싼채 진지하게 훈련에 임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주말판이 전한 일본의 대피 훈련 모습이다. 북한의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 발사 사흘만에 실시된 훈련이다. 대피훈련은 1일 홋카이도 뿐 아니라 아오모리, 후쿠호카 등 3개 현에서 실시됐다. 이시카와현은 하루전에 실시했고, 시마네현은 오는 6일 실시한다.
일본은 잦은 지진과 태풍 탓에 전세계 어떤 나라보다 정교한 재난대비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J-얼랏(Alert)’에 따라 당국은 국민들의 휴대폰에 비상 메시지를 띄우고 신속하게 주민보호에 나선다. 화성-12형이 훗카이도 상공을 지나간 지난 8월29일 오전 6시2분에도 홋카이도 주민들의 휴대폰에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인한 비상경보가 떴다. 하지만 요란한 훈련이 주민들의 공포의식만 높인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손자와 함께 대피훈련에 참가한 한 주민은 “과연 대피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당국이 또 경보를 보낸다면 집에 머무는 게 더 안전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J-얼랏에 따라 경보가 발송된 8월29일 상황을 보면 일리가 있는 회의론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시간은 오전 5시58분이고, 휴대폰 경보는 6시2분에 떴다. 하지만 4분 뒤 미사일이 홋카이도 상공을 지났고, 6시12분에 태평양에 떨어졌다. 타키카와 주민들이 대피소에 도착하기 전에 상황이 종료됐다. 대피 훈련이 오히려 북한의 위협이 노리는 프로파갠다 효과를 증폭시켜준다는 비난이 제기되는 까닭이다. 주민의 안전은커녕 김정은이나 좋아할 훈련이 아니냐는 문제 제기다. 산케이 신문에 따르면 이바라키현에서는 “대피훈련이 긴장만 높인다”면서 당국의 훈련에 반발하는 시위가 있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재무장과 평화헌법 개헌을 위해 북핵 위협을 의도적으로 높인다는 지적은 진작부터 제기돼 왔다. 아베 총리는 지난 4월 17일에는 중의원(하원) 공개발언을 통해 “유사시 한반도에서 넘어올 난민들을 스크리닝(심사)할 기준과 대피소 건립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내 일본인 6만명의 보호방안에 대해서도 협의를 했다고 전했다.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의 트라우마가 있는 자국민에게 “북한이 사린가스를 장착한 미사일 발사능력을 갖췄을 것”이라고 말해 한껏 위기지수를 끌어올린 바 있다.
한국인이 위기에 둔감한 것은 위협에 상시노출돼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실제로 북한은 휴전선에 배치한 1000여문의 장사정·방사포 만으로도 수도권을 불바다로 만들어 놓을 능력을 갖추고 있다. 위협과 공존하면서 오래전부터 감각이 무뎌졌다. 1994년 1차 북핵위기 당시 한반도에 전운이 짙어가던 무렵 로이터 통신의 서울 르포기사의 제목이 ‘위기는 무슨 위기(Crisis? What Crisis?)’이었다. 빌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 핵시설 선제타격계획을 구체화하고, 주한 미국인들 소개훈련을 실시해 전세계 언론이 한반도 전쟁위기를 보도하던 시점이었지만 서울은 지극히 태평했다.
한국인들이 민방위 훈련에 거부적인 반응을 보이는 또다른 이유는 독재시대의 트라우마 때문인 것 같다. 1975년에 시작된 민방위 훈련은 독재정권이 끊임 없이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는 장치의 하나로 활용됐다. 정치 지도자 입장에서 독재시대의 기억이 담긴 민방위 훈련을 다시 거론하는 것이 정치적 부담이 갈 것이 분명하다. 주민 불안심리로 인해 일상생활에 다소 지장을 줄 수도 있다. 증권시장에도 영향이 없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원유 100% 끊어도 북한군 1년은 버틴다" (0) | 2017.09.06 |
---|---|
[김진호의 세계읽기]한반도 위기의 새로운 악재, 뉴클리어EMP폭탄 (1) | 2017.09.05 |
[김진호의 세계읽기]'광인'이 돌아왔다. 이번엔 한 명이 아니다 (0) | 2017.08.24 |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 유사시' 군사소통 강화키로 전격 합의한 까닭은? (0) | 2017.08.16 |
광복절 아침에 비켜간 ‘전쟁 위기’... 말을 아끼고, 준비할 때다 (0) | 2017.0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