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모처에서 수소탄이라고 주장하는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감행한 9월3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한 사진이다. AP연합뉴스
북한의 6차 핵실험은 한반도 위기의 성격을 바꿔놓았다. 이번 핵실험이 사상 최대 폭발력을 입증했다거나, 수폭실험이었다는 사실 때문 만은 아니다. 북한이 9월3일 핵실험과 함께 전자기파(EMP·Elotromagnetic Pulse) 공격 능력을 주장하고 나선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나 북한이 먼저 핵무기로 상대방을 공격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특히 북한이 선제공격을 할 경우, 미국의 압도적인 핵전력 때문에 석기시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1990년대 초 북핵위기가 처음 불거진 이후 역대 미국 행정부가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고 강조하면서도 쉽게 카드를 꺼내지 못한 까닭이다. 하지만 EMP 공격은 전혀 새로운 국면을 예고한다. 북한의 절멸로 귀결될 핵대결까지 가지 않으면서 한국과 일본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강조한 EMP는 핵전자기파(NEMP)이다. 전날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우리 수소탄은 전략적 목적에 따라 고공에서 폭발시켜 광대한 지역에 초강력 EMP공격까지 가할 수 있는 다기능화된 열핵 전투부(탄두)”라고 주장했다.
■EMP는 무엇인가
EMP 현상이 발견된 것은 1962년이었다. 미국이 태평양 상의 존트턴섬 상공에서 1.4메가톤 규모의 수폭 실험을 한 뒤 1000㎞ 가까이 떨어진 하와이에서 전등이 깨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태양에서 발생하는 전자기파도 전력계통을 파괴할 수 있다. 1989년 캐나다 퀘벡의 정전사태 태양표면에서 발생한 강력한 폭발이 전자기파를 담은 구름을 형성하면서 일어났다. 번개도 전력을 파괴할 수있다. 1962년 미국의 수폭실험은 하와이의 전화나 라디오 방송까지 파괴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금의 통신장비 및 전력 체계는 당시에 비해 훨씬 민감하기 때문에 전자기파 공격에 취약할 수있다. 전자기파가 번개와 다른 점은 건물을 파괴하거나 인명을 살상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성능이 좋은 EMP탄이라면 전자기구와 전력계통은 물론 자동차 밧데리의 작은 전설줄까지 끊을 수 있다. 순식간에 발생하는 전자기파 E1과 E2, E3는 광범위한 지역에 최장 몇달동원 복구 불가능한 피해를 입힐 수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4일 “최악의 시나리오는 정전이 몇개월 동안 계속되는 것”이라면서 병원 응급시설과 기본적인 사회 인프라가 장기간 작동하지 않으면서 간접적인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4일 김책공업종합대학 학부장 김성원의 명의로 ‘핵무기의 EMP 위력’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기고문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핵폭탄이 30~100㎞ 상공에서 폭발할 때 발생하는 강한 전자기파를 말한다. 폭발과 동시에 발생하는 순간감마선과 기타 방사선들의 이온화 작용으로 많은 전자가 발생하면서 전자기파가 지면 가까이에 이르면 10만V/m의 전기마당이 형성돼 전자·전전력계통을 파괴한다. 노동신문은 EMP를 ‘하나의 중요한 타격방식’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이 EMP탄을 동원할 가능성은?
EMP가 사용 즉시 북한의 절멸을 가져올 핵전쟁을 야기할 핵탄두나 생화학탄두에 비하면 저강도 무기라고 할 수있다. 하지만 고도의 전자시스템으로 구축된 한국과 일본, 미국의 방어기제를 무력화하고 전력계통을 마비시킬 가능성은 있다. 북한이 특히 미국 본토나 괌, 하와이 미군기지를 대상으로 사용한다면, 미국의 보복공격을 피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핵공격 못지않게 발사버튼을 누르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이 미사일 몇발로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를 공격하는 것 보다 실리콘밸리를 비롯한 산업시설을 황폐화시킨다면 더 큰 타격이 될 수있기 때문이다. EMP탄의 버튼을 누르는 게 쉽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북한이 또다른 공격옵션을 갖게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 대목에서 주목해야할 것은 북한의 전략적인 엄포(bluffing)다. 북한의 주장을 무시해도 곤란하지만, 그렇다고 곧이 곧대로 믿어서도 곤란하다는 말이다. 북한은 실제 능력보다 한발짝 앞서서 군사적 능력을 부풀려왔다. 핵실험의 경우만 보아도 북한이 핵탄두의 소형화·경량화에 성공했다고 처음 발표한 것은 2013년 2월의 3차 핵실험 당시이다. 하지만 2016년 9월의 5차 핵실험 뒤 핵탄두의 표준화·규격화를 최종 확인했다면서 소형화·경량화에 더해 다종화가 가능해졌다고 발표했다. 수소폭탄 실험도 북한의 발표만 보면 이미 2016년 1월의 4차 핵실험에서 성공했다. 하지만 1년 7개월이 지난 이번 6차 실험에서도 과연 실험한 것이 폭발력이 높은 원자탄인지 수소탄인지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갈린다. 결국 북한이 처음 거론한 EMP 능력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추론할 수있다. 국가정보원은 4일 “이번 핵실험의 위력은 50kt으로 6차례 핵실험 가운데 최대 규모”라면서도 “EMP탄인지 수소폭탄인지는 추가 분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미국의 EMP 공격 의도를 꿰뚫고 선제 공개한 것일수도
북한이 실제 정교한 EMP능력을 갖췄는지 여부에 못지 않게 주목되는 것은 미국의 의도를 꿰뚫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회가 EMP 위원회를 발족시킨 것은 2001년이다. 정식명칭은 ‘EMP공격으로 인한 미국의 위협 위원회’이다. 2004년에 이어 2008년 보고서를 발간했다. 2008년 보고서는 미국의 중요한 인프라가 장광범위하고 장기적으로 지속되는 공격을 받을 가능성을 경고한 바 있다. 여러개의 핵탄두로 전면적인 EMP 공격을 받을 경우 18개월 내에 미국민 90%가 식량부족과 질병, 사회붕괴로 사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EMP를 발견한 미국이 방어 방안만 모색해온 것은 아니다. EMP를 공격무기로 활용하는 방안 역시 논의해왔다. 실제로 미국은 2003년 3월 이라크 침공과정에서 EMP탄을 사상 처음 실전 사용했다는 의혹이 여러차례 제기된 바 있다. 그렇지 않다면 사담 후세인이 구축해놓은 37만5000명의 육군과 최대 8만여명의 정예 혁명수비대가 순식간에 궤멸할 수없었다는 이유에서 제기된 의혹들이다. 미군은 북한의 2012년 12월12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직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대북 EMP 공격훈련을 했다는 주장도 있다. 2013년 2월 버지니아주 알링턴에서 열린 ‘제5차 핵억지력 회의’에서는 러시아나 중국 처럼 광활한 영토를 갖고 있는 가상적국의 군사·산업 인프라를 순식간에 마비시킬 EMP 핵폭탄을 개발이 논의되기도 했다.
[김진호의 세계읽기]러시아 해법은 북핵 인정하고 군축협상하자는 것? (2) | 2017.09.13 |
---|---|
"원유 100% 끊어도 북한군 1년은 버틴다" (0) | 2017.09.06 |
[김진호의 세계읽기]군사훈련엔 진지하고, 대피훈련엔 둔감한 한국 (1) | 2017.09.04 |
[김진호의 세계읽기]'광인'이 돌아왔다. 이번엔 한 명이 아니다 (0) | 2017.08.24 |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 유사시' 군사소통 강화키로 전격 합의한 까닭은? (0) | 2017.08.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