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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호의 세계읽기]'광인'이 돌아왔다. 이번엔 한 명이 아니다

한반도, 오늘

by gino's 2017. 8. 24.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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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던퍼드 미국 합참의장이 8월16일 중국 랴오닝성 하이충의 북부전구 예하부대를 방문해 쑹푸쉬안(宋普選) 사령관과 악수를 하고 있다. 두 사람은 일선 전투부대의 실탄사격 훈련을 함께 참관하고 한반도 유사시 양국 군 사이의 교신을 강화하기로 했다.  AP연합뉴스

■두명의 ‘광인’이 벌이는 한반도 치킨 게임 

‘광인(Madman)’이 돌아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발언은 분명 신호탄이었다. 우리가 보아온 여느 미국 대통령 답지 않은 트럼프의 장광설이 충격을 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충격 속에 한반도 위기의 본질을 흐릿하게 보아서는 안된다. 표현의 문제일 뿐, 트럼프가 내놓은 경고의 성격은 ‘오래된 현재’이기 때문이다. 본질의 한축은 ‘광인 이론(Madman Theory)’이다. “미친놈이 어떤 행동을 하게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상대에게 안겨줌으로써 분쟁을 막는다는 냉전시대의 고전적인 억지이론이다. 트럼프의 미국과 북한이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처럼 끝간 데 없이 긴장감을 증폭시켰던 8월 위기도 잦아들고 있다. 한바탕 태풍이 지나간 한반도에는 무엇이 남았는가. 광인 이론은 태생부터 한반도 위기와 관련이 있다. 

국제정치학자들은 광인이론의 원조로 리처드 닉슨을 꼽는다. 미친놈의 무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핵폭탄이다. 닉슨은 1969년 월맹과 소련을 상대로 미국이 세계대전규모의 전쟁을 불사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실제로 그 해 10월27일부터 사흘 동안 핵무기를 장착한 B-52s 편대가 소련을 향해 발진했다(작전명 자이언트 랜스). 월맹은 평화협정에 나왔고, 전략은 먹혔다. 닉슨이 의도적으로 조성한 위기였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존 F 케네디는 소련에 대해 쿠바 공습을 경고했다. “33%에서 50%”의 핵전쟁 가능성을 감안하고 벌인 광인 전략이었다. 

방한한 조지프 던퍼드 미국 합참의장이 8월14일 서울 국방부 청사에서 송영무 국방장관을 만나 환담하고있다. 던퍼드 합참의장은 북핵 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 외교적 해법에 의한 해결을 강조했다.  AP연합뉴스

방한한 조지프 던퍼드 미국 합참의장이 8월14일 서울 국방부 청사에서 송영무 국방장관을 만나 환담하고있다. 던퍼드 합참의장은 북핵 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 외교적 해법에 의한 해결을 강조했다. AP연합뉴스

■한국전쟁과 냉전의 산물, ‘광인 이론’ 

닉슨의 광인 전략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에게 빚진 것이다. 그 바탕에 한반도가 있었다. 1952년 12월 대통령 당선자 신분으로 한국을 방문한 아이젠하워는 “한국전쟁을 조속하게 종식하기 위해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적을 상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래식 지상공격과는 확실하게 다른 행동, 즉 핵공격의 필요성을 암시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전임 해리 트루먼이 기자회견을 통해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공개한 뒤 더글라스 맥아더는 26개의 핵폭탄을 사용할 계획을 보고해놓은 상태였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이후 세번째로 핵이 투하될 장소로 공산군의 전력이 집중된 개성이 꼽히기도 했다.(정욱식 <핵의 세계사>) 

수백만명의 ‘원자탄 피난민’이 남으로 향했던 직접적인 핵위협은 중공군이 개입한 1950년 11월 해리 트루먼이 내놓았다. 하버드대 교수 그레이엄 앨리슨이 “북한을 상대로 한 트럼프의 핵치킨 전략이 무섭기는 하지만 유별난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하는 까닭이다. 1990년대 북핵 위기 이후 빌 클린턴-조지 부시-버락 오바마에 이르기까지 역대 백악관 주인들이 ‘모든 옵션’이라는 외교적 수사 속에 숨겨왔던 발톱을 트럼프가 살짝 드러냈을 뿐이다. 

미국이 사실상 핵을 독점하거나 압도적인 핵전력의 우위를 갖고 있을 때 시작된 미친놈 이론이 21세기 한복판에 다시 등장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광인이 한명이 아니라는 점이다. 북한은 한국전쟁의 참호에서 가슴 졸였을 핵전쟁의 위협을 자기식의 광인 전략으로 되받고 있다. 핵과 미사일 개발의 결과물을 들고 이제 미국을 위협하는 상황극을 스스로 연출하게된 것이다. 핵무기의 소형화, 경량화에 성공했다는 2013년 2월의 3차 핵실험을 기점으로 갈수록 대담하게 미국 공격 위협을 내놓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 그 결과는 ‘핵을 이고 사는 것’이다. 

한국과 중국에 이어 일본을 방문한 조지프 던퍼드 미국 합참의장(왼쪽)이 8월18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던퍼드는 한반도 유사시 일본 방위공약을 거듭 확인했다. |AP연합뉴스

한국과 중국에 이어 일본을 방문한 조지프 던퍼드 미국 합참의장(왼쪽)이 8월18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던퍼드는 한반도 유사시 일본 방위공약을 거듭 확인했다. |AP연합뉴스

■“게임은 끝났다”...핵을 이고 살아야 하는 운명 

트럼프의 책사였던 스티브 배넌 백악관 선임전략고문이 지난 18일 자리를 내놓은 이유는 아메리칸 프로스펙트 인터뷰(8월16일자)에서 트럼프의 광인 전략이 빈껍데기라고, 천기를 누설했기 때문이다. 광인 전략은 상대가 진짜로 미쳤다고 믿기 전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 배넌은 “북한의 핵위협에 대해 어떠한 군사적 해법도 없다. 우리는 북한에 졌다(they got us)”라고 말해 판을 흐려놓았다. 8월 위기 한복판에 홍수처럼 쏟아졌던 수많은 논평 중에서 가장 솔직한 말인지도 모른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바로 다음날(17일) 도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적대행위를 시작한다면 강력한 군사적 대응이 있을 것”이라고 거듭 경고해야 했다. 

하지만 미들버리 국제문제연구소의 동아시아 비확산프로그램 국장인 제프리 루이스는 더 일찍 비슷한 말을 내놓았다. 8월9일자 포린폴리시에 ‘게임은 끝났다. 북한이 이겼다(The Game Is Over, and North Korea Has Won)’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제 유일하게 남은 대안은 북한과 대화하는 것 뿐”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가 아이젠하워와 닉슨, 케네디를 잇는 냉전시대의 광인 전략을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내놓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미친놈 전략이 쉽게 먹힐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9번째 핵보유국’으로서 북한의 지위는 이번 위기를 넘기면서 더욱 굳어졌다. 지난 7월 북한의 두차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발사를 고비로 새로운 상황에서 새로운 해법들이 나오고 있다. 북핵 위기를 다뤄온 4개의 미국 행정부 가운데 북·미 회담을 통해 유일하게 북한과 직거래를 했던 것은 빌 클린턴 행정부였다. 최정예 외교안보팀을 동원해 1994년 ‘제네바 합의’를 도출해냈다. 그 역시 북한의 핵시설에 대한 외과수술식 타격(Surgical Strike)를 심각하게 검토했지만 광인 전략은 아니었다.

나머지 부시-오바마 행정부 16년 동안 미국은 중국에 북핵문제 해결을 아웃소싱했지만 먹히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도 물려받았다. 지난 4월 “중국과의 큰 거래(Grand Bargain)로 풀겠다 ”는 트럼프의 발언이 신호탄이었다. 

스티브 배넌 미국 백악관 선임고문이 8월16일자 진보적인 아메리칸 프로스펙트 인터뷰에서 “대북 군사해법은 없다. 북한이 우리를 이겼다”는 발언을 한 지 이틀만인 18일 사직서를 제출하고 백악관을 떠났다. 사진은 지난 2월16일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기자회견장에 도착한 모습.  AP연합뉴스

스티브 배넌 미국 백악관 선임고문이 8월16일자 진보적인 아메리칸 프로스펙트 인터뷰에서 “대북 군사해법은 없다. 북한이 우리를 이겼다”는 발언을 한 지 이틀만인 18일 사직서를 제출하고 백악관을 떠났다. 사진은 지난 2월16일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기자회견장에 도착한 모습. AP연합뉴스 

■한반도문제 해결은 중국이...일제히 중국 지목하는 미국 

미국의 전·현직 당국자들의 아이디어는 서로 겹치면서 일관되게 중국을 가리킨다. 중국 역할론은 압력론과 대화론으로 갈린다.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은 북한의 핵보유(10~20개 추산)를 현상태에서 동결하고 미사일 사거리만 줄일 것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북한과 마주앉기 전에 중국에 더 큰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퍼 301조를 동원해 중국과 무역전쟁도 불사하겠다는 트럼프의 행보와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수전 라이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헨리 키신저는 중국과의 대화를 강조한다. 라이스는 ‘한반도 유사시’를 대비한 중국과의 대화에 방점을 찍었다. 키신저는 예의 미·중 빅딜을 통한 해법을 내놓았다. 북핵을 저지하고 북한 붕괴 이후의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를 놓고 중국과 큰 그림을 그리라는 조언이다. 통일한반도에서의 주한미군 철수는 그 부속물 중의 하나다. 전직들이 중국과의 ‘새로운 압력, 새로운 대화’를 강조하는 사이 조지프 던퍼드 미국 합참의장은 최근 랴오닝성 선양의 인민해방군 북부전구지휘부를 방문해 한반도 유사시 교신강화에 합의했다. 주한미군 사령관이 북·중 접경을 관할하는 인민해방군 북부전구 사령관과 전화통화라도 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들이 담겨 있다. 전투부대의 실탄 훈련을 참관하고 중국 병사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북한군 병사들이 지난 7월6일 평양 김일성광장에 모여 이틀전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시험발사를 축하하고 있다. 7월4일과 28일 북한의 두차례 화성-14형 시험발사는 미국 본토에 도달할 미사일 능력이 획기적으로 진전됐음을 보여주면서 한반도 위기상황에서 북한이 주도권을 쥐게되는 게임체인저(Game Changer) 역할을 했다. AP연합뉴스

북한군 병사들이 지난 7월6일 평양 김일성광장에 모여 이틀전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시험발사를 축하하고 있다. 7월4일과 28일 북한의 두차례 화성-14형 시험발사는 미국 본토에 도달할 미사일 능력이 획기적으로 진전됐음을 보여주면서 한반도 위기상황에서 북한이 주도권을 쥐게되는 게임체인저(Game Changer) 역할을 했다. AP연합뉴스 

■한손엔 핵무기, 다른 손엔 무역보복...트럼프, 중국과 치킨게임

트럼프의 광인 전략이 냉전시대의 그것과 확연히 다른 점은 두가지다. 우선 핵무기 뿐 아니라 무역전쟁을 들고 나왔고, 그 대상이 북한 뿐 아니라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반도 현 분단상태를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중국이 움직일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더구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올 가을(10월 말 또는 11월 초) 공산당 대회 전까지는 급격한 정책변경을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중국이 움직인다면 시 주석이 5년 임기를 더 부여받은 뒤일 수밖에 없다. 

광인과 광인이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처럼 돌진하는 상황을 ‘치킨게임’이라고 한다. 트럼프는 그걸 중국과 하려고 한다. 앨리슨은 그 핵심을 중국을 대북 석유공급 중단으로 들었다. 북한 석유수요의 90%를 공급하는 중국이 파이프를 잠근다면 김정은이 즉각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없다는 이유에서다. 바로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 대사가 지난 8월5일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2371호에 담으려고 백방의 노력을 했지만 실패한 것이다. 북한의 추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로켓 시험발사나, 6차 핵실험 여부와 상관없이 한반도위기가 미답의 변곡점을 맞이한다면 그 시점은 올 가을이 될 것이다. 미국의 새로운 대중 아웃소싱이 효력이 있는지, 대북 경제적, 외교적 압박이 유효한 지는 그때쯤 윤곽이 드러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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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8231103001&code=970100#csidx85d76d44aa154c89eac78e5634e256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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