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그런 것을 확인해 줄 이유도, 해준 적도 없지 않으냐.” 연전에 강제북송 위기에 처했다는 재중 탈북자 62명의 안전을 묻자 외교통상부 고위당국자가 내뱉은 말이다. 한국 정부가 재중 탈북자 문제와 관련해 취하고 있는 ‘조용한 외교’는 탈북자의 안전이 아니라, 이를 담당하는 외교부 직원들의 안전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중국은 산 탈북자만 북한으로 되돌려 보내는 게 아니다. 그 즈음 남측 가족에게 전달하기 위해 반출된 국군포로의 유해를 ‘위생적인 이유’로 압수해 북한으로 되돌려 보냈다. 이에 대한 외교부 책임당국자의 답변 또한 가관이었다. “어쨌든 유해가 부적절한 방식으로 (중국에) 밀반입된 것은 사실 아닌가. 좀 더 주의해서 가져왔어야지….”
정부가 오랜만에 침묵을 깨고 중국에 대해 할 말을 했다. 외교통상부 고위당국자는 엊그제 북송 위기에 처한 탈북자들을 강제북송하지 말라면서 “중국은 난민협약과 고문방지협약 등 국제법을 준수하라”고 공개 촉구했다. 오는 3월 서울에서 열릴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이를 제기할 방침이라는 말도 들린다. 수 미상의 탈북자들이 중국 공안당국에 의해 강제북송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11차례나 보낸 진위 확인 공문에 중국 정부가 아무런 답을 하지 않자 나온 발언이다. 일견 ‘조용한 외교’ 원칙에 따라 가급적 막후에서 중국 정부의 협조를 구하는 자세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모처럼 정부가 내보인 ‘결기’에 과연 강한 의지가 실렸는지 의문부호가 달리는 것은 누차 확인해온 정부의 어정쩡한 자세 탓이다. 지난 정부는 물론,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한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정부가 모처럼 할 말을 하면서도 외교부 공식성명이 아닌, 익명의 고위당국자 입을 빌린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한·중 외교장관 회담이 열릴 때까지 북송 위기에 처한 탈북자들이 안전할지도 미지수다. 또 회담에서 정부가 얼마나 의지를 갖고 탈북자 문제를 거론할지, 중국 측의 입장이 개선될지 역시 불투명하다.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은 이미 석달 전 방중한 류우익 통일부 장관이 탈북자들의 조속한 한국행을 당부하자 “북측의 비법(非法) 입국자 문제는 국내법과 국제법, 인도주의 원칙에 따라 타당하게 처리해 나갈 것”이라며 판에 박힌 답을 내놓은 바 있다.
국내법과 국제법, 인도주의 원칙은 얼핏 주권국가의 당연한 권리처럼 들리지만 한꺼풀 들춰보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이다. 난민협약 제1조에 따르면 난민은 ‘인종, 종교, 국적 또는 특정 사회 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 밖에 있는 사람’이다.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사람’도 포함한다. 중국은 그럼에도 탈북자를 ‘경제적 필요에 따라 중국으로 도피한 불법체류자’라고 멋대로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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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중 탈북자 문제는 남북한과 중국 모두에 뜨거운 감자다. 동시에 공동정범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북한이 단속을 강화하면 중국도 보조를 맞추고 탈북자의 수가 줄어든다. 탈북자를 즉결 처형하고 3족을 멸하라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특명이 내려진 것으로 전해진 지난해 말부터 더욱 경계가 강화됐을 게 분명하다. 내놓고 반기지는 못하겠지만 남한의 외교당국으로선 골치아픈 일거리가 줄어드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한때 보호하고 있는 탈북자가 너무 많아 수용능력에 한계가 있다던 베이징 주재 한국총영사관에는 최근 수십명의 탈북자만 남아 있다고 한다.
중국 공안당국이 매년 북한으로 되돌려 보내는 탈북자의 수는 수천명이라고 한다. 그 중 유독 여론의 주목을 받는 일부분의 경우에만 한국 외교의 손길이 닿는 구조다. 그 사이 베이징총영사관이 제3의 장소에서 보호하고 있던 국군포로 가족 9명이 중국 공안에 체포되더니 지난해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동안 베이징의 한국영사관에서 생활하면서 하염없이 한국행을 기다리다 지친 탈북자 10여명이 집단이탈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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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수많은 탈북자들의 안전과 운명은 고스란히 탈북을 주선하는 민간인 브로커의 손에 달려 있다. 몽골과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버마 등 중국 주변의 제3국으로 우회하기 위한 죽음의 행진도 계속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중국의 기괴한 논리와 한국의 ‘조용한 외교’가 함께 방치하고 있는 불편한 진실이다. 현 정부 초기 한·중관계가 서먹해졌다지만 이제 임기말 대통령이 나서 자유무역협정(FTA)까지 거론하는 형국이다. 탈북자 외교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어려운 걸 풀라고 있는 게 외교 아니던가. 정부의 대 중국 메시지가 여론 무마용으로 나온 게 아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