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톨령 당선자 에마뉘엘 마크롱이 7일 루브르 박물관 마당에서 대선승리 연설을 하고 있다. TV5화면캡처
열광도 감동도 덜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당선자는 선거 유세 기간 동안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을 벤치마킹했다. “레드스테이트(공화당지지주)의 미국도, 블루스테이트(민주당지지주)의 미국이 아닌, 우리가 늘 그래왔고 앞으로도 단합된 미국(United States of America)을 만들겠다”는 문구를 표절해 “모두의 프랑스”를 강조한 것이 대표적이다. 마크롱은 오바마의 ‘담대한 희망’을 본따 이번 승리를 ‘담대함의 승리’라고 선언했다. 오바마는 “바로 오늘 밤, 변화가 시작됐다”고 선언했지만, 당장 다음달 총선이 급한 마크롱이 언급한 ‘변화’는 달랐다. 변화를 만들어낼테니 다음 달 총선에서 하원(국민의회) 다수당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었다.
7일 밤 10시30분 루브르 박물관 궁정에서 한 그의 승리연설과 2008년 11월5일 밤 비슷한 시간 시카고 그랜드파크에서 한 오바마의 승리연설에서 드러난 확연한 차이다.
루브르 박물관 안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낸 마크롱이 몇개의 계단을 내려와 연단으로 천천히 향하는 데 걸린 시간은 3분30초. 베토벤의 9번 ‘합창’ 교향곡 제4악장 ‘환희의 송가’가 장중하게 울려 퍼졌다. 무대에 올라 두손을 번쩍 들어보이면서 연설을 시작하기 전까지 마크롱의 제스처 역시 느린 동작이었다. 축하파티 보다는 장중한 의식의 집도자로 비쳤다.
오바마는 그랜드파크의 넓은 연단에 부인 미셸과 어린 두 딸의 손을 잡고 같이 올랐다. 국회의원의 첫 등원일에 자식들은 물론 손자, 손녀까지 데리고 나오는 미국식 전통에 따른 것. 잠시후 가족들은 들어가고 연설을 시작했다. 첫마디는 “헬로, 시카고”였다. 오바마는 연설 초반부에 곧바로 대선에서 패배한 공화당의 존 매케인 후보와 그의 러닝메이트 새라 페일린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길게 보내면서 훌륭한 지도자들이라고 추켜세웠다. 이어 “그들과 함께 일해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크롱은 패배한 마린 르펜 민족전선(FN) 후보에게 별다른 위로의 메시지도 보내지 않았다. 되레 지난 3일 상호비방과 욕설로 얼룩졌던 마지막 TV토론의 연장인 듯 르펜을 밀쳐냈다. “경제적 어려움과 허물어진 국가도덕 등의 어려움 탓에 일부(유권자들)는 분노와 의심, 걱정에서 극단주의자에게 표를 줬다. 마린 르펜이 34.2%를 득표했다. 우리를 약하게 하는 분열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당장 내일부터 통합과 화해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5년 뒤에는 극단주의자들에게 표를 줄 어떠한 이유도 없게 만들겠다”는 말로 대신했다.
대선 종료 연설에서 패배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마크롱의 승리를 축하한 르펜과도 대비됐다. 전반적으로 앞으로 해야할 일을 나열하는 모범생의 코멘트 수준을 크게 넘지 못했다.
오바마의 경우 독립 200여년만에 첫 흑인대통령이라는 역사적 의미와 함께 명연설로 대선승리연설장을 감동의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것과 크게 대비됐다. 경제위기와 무너지는 노동, 이민자 문제 등 숱한 난제를 앞두고 당선됐다는 점에서 마크롱이나 오바마는 비슷하다. 오바마는 “미국 경제의 성공은 국내총생산(GDP)의 규모에만 의존해온 게 아니다”라면서 질적 성장을 강조했다. 마크롱은 2022년까지 600억유로 규모의 예산절감을 위해 12만명의 공무원 감축과 친기업적 노동법 개혁을 다짐하고 있다. 오바마가 갈 길은 멀고 험하지만, 미국이 건국 이래 걸어온 길을 상기시키면서 “60년 전이라면 시골 식당에서 서빙을 받지도 못했을 (흑인)아버지의 아들이 가장 신성한 서약의 자리에 서 있을 수 있게 됐다”면서 감동을 선사했다.
‘담대함’과 ‘희망’ ‘변화’ 등 오바마의 키워드들이 많이 등장했지만 젊고 잘생긴 마크롱의 이미지에 비해 갈 길은 멀고도 험해 보인다. 오바마와 매케인의 득표율은 각각 52%대 46%였다. 마크롱과 르펜의 득표율은 출구조사 결과 65% 대 35% 정도다. 하지만 사상 최고의 기권율(25.4%)과 무효표(11.5%)를 제외하면 실 득표율은 43%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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