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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대선에 세계가 주목하는 까닭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3. 5. 13.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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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젭 타이프 에르도안(69) 튀르키예 대통령이 오는 14일 대선에서 3선에 도전한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집권 정의개발당(AKP)과 몇몇 우파정당들의 선거연합인 '인민동맹' 후보로 나선다. 모두 4명의 후보가 나왔지만, 6개 야당간 선거연합인 '국가동맹'의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CHP) 대표(74)가 에르도안과 함께 각종 여론조사에서 40%대 지지를 받으면서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오는 5월 대통령선거에서 3선에 도전하는 레세프 타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지난 3월 14일로 집권 20년을 맞았다. 사진은 2017년 11월 10일 튀르키예 국부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서거 79주년을 맞아 앙카라의 영묘를 방문하는 모습. AP 자료사진 연합뉴스

에르도안 정부가 언론을 장악한 상황에서 클르츠다로을루 후보가 약진하는 것은 지난 2월 발생한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이후 반정부 정서가 강해진 것과 궤를 같이한다. 튀르키예에서만 5만 783명이 사망했다. 에르도안의 20년 장기 집권에 따른 부패와 무능이 겹친 데다가 건축허가를 부실로 내어준 탓에 피해가 컸기 때문에 반정부 여론이 거세게 형성되고 있다.

이번 튀르키예 대선 결과는 안팎으로 심대한 의미를 던진다. 국내적으론 대통령 중심의 에르도안 체제에서 케말 아타튀르크(국부)가 세웠던 세속주의 민주공화국으로 과연 복귀할지가 관건이다. 클르츠다로을루의 CHP는 케말이 세운 정당이다. '민주주의자'를 자처하는 그는 반부패 의지를 내보이면서 인기를 얻고 있다. 선거 공약으로는 강력한 의회 시스템으로의 복귀와 쿠르드족 문제 해결, 유럽연합(EU) 및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내세우고 있다. 튀르키예 내 시리아 난민을 본국으로 송환시키겠다는 공약도 내놓았다.

에르도안은 대통령제의 유지 및 낮은 이자율, 폭넓은 지역 내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하고 독립적인 대외전략을 다짐하고 있다. 1차 투표에서 과반을 획득한 후보가 없으면, 28일 결선투표를 치른다.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총선에선 600명의 의원을 선출한다. 18세 이상 유권자는 6400만 명이다.

의회주의와 대통령제의 대결

튀르키예 현대사는 에르도안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케말 아타튀르크(국부)가 오토만 제국의 잔해에서 건국한 민주공화국 튀르키예는 에르도안 이전까지 케말의 '유훈 통치'가 이어지던 국가였다. 서구식 민주주의와 내각제, 정·교 분리의 세속주의 원칙이 유지됐다. 정치가 케말의 유훈에서 벗어나면, 군이 개입해 복원시킨 뒤 민정으로 넘겼다.

2003년 총리로 등극한 에르도안(2003~2014)은 미증유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그의 정의개발당(AKP)은 여고생과 무슬림 여경의 히잡 착용을 허용해 무슬림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예전 같으면 군이 나설 상황이었지만, 에르도안은 그 싹을 잘라 버렸다. 2014년 대통령으로 직함을 바꾼 그는 2016년 7월 쿠데타 시도를 명분으로 계엄령을 선포, 2018년 3월까지 5만 명을 체포하고, 16만 명을 군 또는 공직에서 내쫓았다. 전·현직 군 장성은 물론 유훈 체제를 뒷받침하던 기성 지배층을 사실상 제거한 것이다. 계엄령 선포 며칠 만에 131개의 언론매체를 폐쇄했고 117명의 기자를 체포했다. 그중 35명은 테러단체 조직원이라는 혐의로 기소했다. 의회의 행정부 견제 기능도 없앴다.

튀르키예 대선을 닷새 앞둔 지난 9일 이스탄불 시내에서 붉은 장미꽃을 든 젊은 커플이 유력한 야당 후보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후보의 선거 포스터 앞을 지나가고 있다. 2023.5.9. EPA 연합뉴스

케말이 초석을 세운 민주공화국이 일거에 권위주의 체제로 넘어간 것이다. 서방 매체에서 에르도안을 '스트롱맨'으로 부르는 근거다. 그는 2017년 4월 개헌 국민투표로 총리직을 아예 없앤 뒤 이듬해 대선에서 재선됐다.

스트롱맨 에르도안 철권통치 종식되나 

대외적으론 더 큰 함의를 지닌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튀르키예가 틀어쥔 보스포러스 해협의 통행권이 결정적인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르도안은 건국 이후 유지되던 친미·친서방 궤도에서도 이탈했다. 냉전 시절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핵심 회원국이자 자유 진영의 전초기지로 역할을 수행했지만, 서방이 유럽연합(EU) 가입을 한사코 저지해온 것과 무관치 않다. 안보에선 이용하고, 경제에선 내치는 격이다. 이는 오토만 제국 이후 500년 동안 유럽국가로 살아왔건만 유럽의 일원으로 인정받지 못한 튀르키예 민심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튀르키예는 여전히 EU 가입을 희망하지만 동시에 '지역 강국(Regional Power)'의 독자적 활동공간을 넓히고 있다.

에르도안은 건국 이후 서쪽만 바라보았던 국가적 시선을 동쪽과 남쪽으로 돌렸다. 에르도안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측에서 모두 환영받는 드문 지도자다. 2011년 아랍의 봄 시위로 독재자 축출에 성공한 리비아·튀니지·이집트를 순방, 록스타와 같은 환대를 받았다. 2006년 창립된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아제르바이잔 등 튀르크어 사용 국가기구(OTS)를 통해 중앙아시아에 강한 입김을 행사하는 한편, 오는 8월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 정상회의에서 가입이 결정된다. 지난해 브라질에서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이 복귀한 데 이어 튀르키예가 브릭스에 가입한다면 반미·반서방 세력권은 더욱 확대된다.

에르도안, "선거로 미국에 가르침 줘야"

에르도안은 나토 회원국이면서도 값비싼 미제 패트리엇 시스템 대신 러시아의 S400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사들이는 실용 외교를 펼쳤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쟁이 벌어지자 에르도안은 피스메이커로 떠올랐다. 전쟁 탓에 세계 곡물시장이 출렁이자 '흑해 곡물 이니셔티브'를 성사시켰다. 우크라이나 전쟁 뒤 핀란드와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반대, 서방과 각을 세우기도 했다. 튀르키예 대선 결과에 따라 흑해 연안은 물론 중앙아시아 및 아랍권의 지정학에 큰 변수가 될 수밖에 없다. 야당이 승리한다면,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도 실효성이 대폭 높아질 수 있다. 튀르키예는 나토 회원국이면서도 서방의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에르도안의 중립이 못마땅한 미국과 서방은 내심 정권교체를 희망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런 와중에 제프 플레이크 튀르키예 주재 미국 대사가 지난 3일 클르츠다로을루 후보와 면담을 갖자 에르도안은 "선거(결과)로 미국에 가르침을 줘야 한다"고 다짐했다.

흑해와 지중해를 잇는 보스포러스 해협(빨간 부분)과 마르마라 해 및 다르다넬스 해협(노란 부분). 튀르키예가 몽트뢰 협약에 따라 통제권을 갖고 있는 길목이다. 위키페디아

보스포러스·다르다넬스 해협 통제권

미국과 러시아가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가장 큰 지정학적 변수는 튀르키예가 틀어쥐고 있는 흑해와 지중해 통행권이다. 튀르키예는 1936년 몽트뢰 협약에 따라 흑해와 지중해를 잇는 통로(보스포러스 해협·마르마라 해·다르다넬스 해협)의 관할권을 갖고 있다. 평화시 민간선박의 통행은 자유지만, 튀르키예가 참전하지 않는 전쟁이 발발한다면, 교전국 군함은 통행할 수 없다. 러시아 흑해함대가 외부로부터 지원을 받거나, 지중해로 진출하는 게 불가능해진다. 우크라이나 함정 역시 마찬가지 제약을 받는다.

튀르키예는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을 '전쟁'으로 규정하면서도 중립을 고수, 협약의 엄격한 적용을 하지 않고 있다. 에르도안이 우크라이나 평화 협상과 흑해 곡물 이니셔티브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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