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14일, 조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 2층의 트리티룸에 들어섰다. 아프가니스탄 철군 계획을 공식 발표하는 자리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뜸 그곳이 2001년 10월7일 조지 부시 대통령이 미군의 아프간 침공 사실을 발표한 자리임을 상기시켰다. 9·11테러로 2977명의 무고한 생명이 희생된 사실도 되새겼다. 회견 전 부시 전 대통령과 통화했음을 공개하면서 아프간에서 복무한 미국 청년들의 노고에 감사한다는 점에서 완벽한 의견일치를 보였다고 소개했다.

바이든은 이 자리에서 올해 9·11테러 20주년 전까지 미군이 전원 아프간에서 떠날 것이라고 공표하면서 개인적 소회를 감추지 않았다. 그만큼 9·11테러와 아프간 침공이 미국민들에게 주는 감상이 유별났기 때문일 게다. 자신이 부통령이 된 이후 지금까지 12년 동안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사망한 미군 장병의 정확한 숫자를 적은 카드를 소지해왔다면서, 이날 현재 아프간에서만 2448명이 숨지고 2만722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그가 앞세운 장남 보가 이라크에 참전했던 사실도 들춰내면서 발표 뒤 아프간에서 숨진 미군 장병들이 묻힌 알링턴 국립묘지 60구역을 찾을 것이라고도 소개했다. 

'농부의 나라', 아프가니스탄이 다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탈레반은 예상보다 훨씬 이른 지난 15일 카불을 접수했다. 아프간 정부군의 어떠한 저항도 받지 않은, 무혈입성이었다. “책임 있고 신중하며 안전한 철수”를 다짐한 바이든의 약속은 공언이 됐다. 카불 공항은 미국인은 물론, 탈출하기 위해 몰려든 아프간인들로 아수라장이 됐다. 바이든은 지난 24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미군이 지난달 말 이후 7만5900명을 탈출시켰다면서, 이달 31일 탈출 지원이 종료될 것이라고 확인했다. 그러나 현재의 탈출 속도라면 그때까지 최소 2만5000명의 미군 조력 아프간인들이 남겨질 것(뉴욕타임스)인 만큼 미군 6000여명의 카불 공항 철수 시한은 조정될 수 있다.

 

아프간 침공의 주역들.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지난 23일 88세의 나이로 알링턴묘지에 안장됐다. 아프간에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겠다고 다짐했던 조지 부시 대통령(75)과 딕 체니 부통령(왼쪽부터)이 재직시절 환담을 나누고 있다. 펜타곤(DOD)

바이든이 올해 내놓은 아프간 관련 연설과 회견문을 읽으며, 이른바 ‘주요 7개국(G7)급’으로 국제적 지위가 격상됐다는 한국이 겹쳐 보였다. 한국 역시 오랜 세월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아프간에 쏟아부은 국가이기 때문이다.

바이든은 아프간 침공 이후 각각 2개의 공화당 및 민주당 행정부가 전쟁을 끌어왔다면서 5번째 행정부에 짐을 넘기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조지 부시(공화)-버락 오바마(민주)-도널드 트럼프(공화)-바이든(민주) 행정부를 언급한 것이다. 바이든은 특정 행정부를 탓하는 대신, 온전히 미국의 실패임을 인정했다. 

한국 역시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등 3개의 민주당 정부와 2개의 보수정부가 관여한 국제이슈였다. 그러나 한·미의 공통점은 딱 여기까지다. 

바이든은 취임 이후 지난 16일까지 모두 6차례에 걸쳐 국민을 상대로 아프간 정책을 밝혔다. 의회 지도부에 보낸 서한을 공개(6월8일)했고,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과의 백악관 정상회담 뒤 공동기자회견(6월25일), 철군 진행 상황 관련 25분간 언론 브리핑(7월8일)을 했다. 아프간 상황이 악화되자 지난 14일 성명을 발표하고 16일 다시 브리핑룸에 섰다. 바이든의 연설, 성명, 회견문에는 일관되게 아프간에 참전한 군인과 가족들에 대한 위로, 동맹 및 협력국가에 대한 감사, 소요 예산, 향후 계획 등이 포함됐다.

미국은 30만명에 달하는 아프간 군경 봉급 지원과 무기 지원 등에 8800억달러를, 민간 지원에 3600억달러를 각각 지출했다. 총 1조2400억달러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올 회계연도(FY 2022)에 아프간군 펀드 지원 명목으로 33억달러의 예산을 요청한 걸 보면 한국 역시 최근까지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은 2016년 11월 한·미 안보협의회(SCM)에서 한국의 아프간 군경 역량 강화 지원 약속(2억5500만달러)에 사의를 표한 바 있다. 

2012년 5월24일 인천 국제평화지원단에서 열린 오쉬노부대 제5진 환송식. 아프간 지방재건팀(PRT)을 방호하기 위해 파견되는 장병들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지난 18일 대의회 연설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6일 방문 중이던 브장송에서 대국민 특별연설을 내놓았다. 바이든의 회견문안에 담겼던 요소들이 포함됐다. 영국군 역시 한국군 오쉬노부대가 철수한 2014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들과 함께 전투임무를 종료했다. 존슨 총리는 9·11테러에서 영국인 67명이 숨졌음을 상기시키면서 나토조약 5조(공동방위)에 따라 참전했음을 강조했다. 최근 영국인 306명과 아프간인 2052명을 탈출시키는 데 들어간 예산을 보고하고 추가 구출 계획을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2008년 아프간 우즈빈 계곡 전투에서 프랑스군 및 현지통역 10명이 죽고, 21명이 다친 사건을 되돌아보며 “프랑스는 아프간인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참전을 결정한 자크 시라크(우파)와 니콜라 사르코지(우파), 프랑수아 올랑드(좌파) 정부의 노력을 회고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카불 함락 이후 여러 차례 기자들과 만나 “극도로 비통하고 극적이며 끔찍하다. 아프간의 인도적 비극에 독일도 책임을 공유한다”고 말했다. 아프간에서 숨진 독일군 59명의 희생을 새삼 애도하고 참전 군인 및 가족들의 고통과 함께했다. 그 역시 독일군 16만명이 참전해 세금 125억유로(148억달러)를 지출했다고 보고했다. 2015년 시리아, 이라크 난민 100만명에 국경을 열었던 것을 언급하며 아프간 난민 구출에 최선을 다하겠다고도 약속했다. 다음달 정계은퇴를 앞두고 있어서인지 거침이 없었다. 미국의 실패와 관련, “미국 국내정치도 부분적인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는 이달 중순 아프간 상황이 긴박해지면서 주로 국민과 공관원들의 철수 상황을 시시각각 보고하는 데 그쳤다. 천재지변 뒤 긴급구출 현황 발표를 방불케 했다. 청와대와 외교부, 국방부 사이트를 아무리 뒤져봐도 아프간 20년에 대한 평가와 국민 부담에 관한 입장은 찾을 수 없었다. 일본 정부 역시 ‘한국 수준’의 발표에 그쳤다. 그나마 스가 요시히데 총리와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이 기자회견에 직접 나와 설명하는 성의를 보였다. 

이라크 침공은 명분 없는 전쟁이었기에 한국군 파병 논의 과정에서 국민적 저항이 거셌다. 반면에 어떤 나라도 미국의 아프간 침공을 반대하지 않았다. 전투부대가 아닌 지방재건팀의 자체 방호병력으로 오쉬노 부대를 파병할 때는 저항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약했다. 

탈레반의 카불 장악 이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24일)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18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16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26일·왼쪽부터)가 각각 아프간 사태와 관련해 발언하는 장면이다. 마크롱 대통령의 사진은 프랑스 엘리제궁이 공개한 대국민 연설 동영상을 캡처했다. 로이터·신화연합뉴스·엘리제궁

 

시계를 돌려 9·11테러 당시로 돌아가보면, 모두가 미국인임을 자임했다. 북한 외무성은 다음날 “매우 비극적인 사건”이었다면서 테러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두 달 뒤 ‘테러자금 조달 억제에 관한 국제협약’과 ‘인질억류 방지에 관한 국제협약’에 가입하겠다고 공언했다. 병원에 입원해 있던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링거를 꽂은 채 알카에다를 비난하던 장면이 새롭다. 미국의 숙적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깡패국가’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까지 나서 테러를 비난하고 미국에 지원을 제안했다. 한국의 아프간 재건 지원 역시 지극히 명분이 분명한 결정이었다는 말이다.

한국군은 2001년 12월 해군과 공군의 수송지원단이 각각 해성부대(823명)와 청마부대(446명)를 필두로 2014년 6월6일 오쉬노부대원 67명이 철수할 때까지 5210명이 참가했다(국방부 홈페이지). 가장 큰 규모는 2010년 7월부터 4년 가까이 아프간 파르완주에서 한 팀으로 활동한 지방재건팀(PRT)·오쉬노부대로 1745명이 참가했다. 다산부대 소속 윤장호 하사가 2007년 바그람기지에서 탈레반의 폭탄테러로 전사했다. 

지난 17일 ‘외교부’를 인용한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주로 공적개발원조(ODA)를 통한 아프간 지원액은 3000억원이 안 되는 2억7600만달러다. 파병비용을 제외한 수치다. 정부 당국자는 “군경 봉급만으로 이명박 정부 5억달러, 박근혜 정부 3억달러를 지출했고, 현 정부도 지출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외교부 대변인실에 관련 질의를 던졌지만, “아프간인 후송작전으로 바쁘다”는 이유로 25일 현재 회신이 없다. 한국의 지출이 1조원을 훨씬 상회할 것이라는 추산만 가능하다. 

9·11테러와 아프간 침공은 한국에도 남의 일이 아니었다. 정도 차이가 있을 뿐 미·영·불·독 국민에만 각별한 사건도 아니었다. 수많은 국민을 동원하고,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였으면 마땅히 국가가 나서 총평과 함께 아퀴를 지어야 한다. 그 교훈을 찾아가는 작업에 착수하는 건 물론이다. 그게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고, 그런 나라를 세계는 주권재민의 원칙이 살아 있는 민주주의 국가라고 한다. 20년이다. 그새 로힝야 난민과 홍콩 및 미얀마 인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졌다. 예멘 난민들의 제주 상륙에 이어 이번에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의 입국에도 큰 저항이 없다. 국민은 세계시민으로 변모하고 있지만, 정부는 제자리다. 특히 기회 있을 때마다 글로벌 역할을 강조해온 외교부의 수준이 실망스럽다. 

아프간은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이 493달러(세계 177위·2018년 국제통화기금 추정치)로 세계 최빈국의 하나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엄청난 재원을 쏟아부어 경제, 사회 발전에 투자한 결과다. 한반도의 3배가 넘는 국토에 추정가치 1조달러의 광물자원이 있지만 노동력의 40%가 땅에 매달리는 가난한 농업국가다. 국가경제의 16%가 아편 재배 및 판매에 의존한다. 지난 세기 영국의 점령과 소련 침공(1979~1989년)으로 국가적 통합성을 상실했다. 3년 내전 뒤 탈레반이 불완전한 지배를 하고 있던 차에 2001년 다시 미국의 침공을 받아 더 복잡해졌다. 

탈레반의 전국 장악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도 미지수이다. 중국 변수를 포함한 아프간의 미래가 다각도로 조명되지만, 알카에다의 시대가 끝난 건 분명하다. 아프간은 다시 중앙아시아의 ‘잊힌 나라’로 돌아갈 가능성이 적지 않다. 펜타곤 수장으로 전쟁을 설계한 도널드 럼즈펠드는 미수의 나이로 지난 23일 알링턴 묘지에 묻혔다. 조지 부시(75)와 딕 체니(80)는 절절히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애도문을 발표했다. 아프간 20년, 한 시대가 온전히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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