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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여적70

[여적]거기엔 사람이 없었다 김진호 논설위원 나쁜 일이 생겼을 때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혼자다. 지난 3일 뉴욕 맨해튼의 지하철역 철로에 떠밀려 숨진 50대 재미동포 한모씨는 불행히도 후자의 경우였다. 이 사건은 다음날 뉴욕포스트가 현장에 있던 프리랜서 사진기자가 찍은 한씨의 최후 모습을 보도하면서 짙은 잔영을 남겼다. 여론의 비난은 한씨를 돕기는커녕 49번이나 셔터를 눌렀던 사진기자 우마르 압바시와 이를 선정적으로 보도한 뉴욕포스트에 집중된다. 그러나 과연 이들에게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한씨는 열차가 다가오는 긴박한 순간에 수차례 승강장 위로 올라오려고 안간힘을 다했지만 결국 허사로 돌아갔다. 주변에는 여러 명의 승객들이 있었다. 이들은 열차를 비상정지시키기 위해 손이나 옷을 흔들며 고함.. 2012. 12. 7.
[여적]옵서버 김진호 논설위원 대한민국처럼 유엔을 짝사랑해온 나라도 드물다. 1964년 제2한강교(현 양화대교) 북단에 흰색의 웅장한 유엔군참전기념탑을 건립, 김포공항을 통해 서울 시내로 진입하는 모든 차량은 기념탑 밑을 지나게 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엔창설기념일(10월24일)을 공휴일로 지정해놓던 시절도 있었다. 1970년대만 해도 유엔참전 16개국의 국명을 모두 외우는 것이 어린 학생들의 과제 중 하나였다. 정부수립 이후 유엔 가입은 국민적 염원이기도 했다. 1949년 1월 가입신청을 한 이후 1955년, 1956년, 1958년, 1975년 등 집요하게 유엔의 문을 두들겼다. 하지만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옛소련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1980년대까지 대학가 축제시즌에 단골메뉴로 ‘모의 유엔 총회’가 열린 .. 2012. 11. 30.
[여적]백의종군 이순신 장군은 두 번의 백의종군을 당했다. 첫 번째는 1587년 10월에서 이듬해 1월까지다. 여진족이 함경도 경흥부의 녹둔도에 침입해 조선군 11명을 살해하자 조정은 둔전관이던 이순신의 책임을 물어 백의(白衣)를 입게 한다. 이순신은 이듬해 1월 여진족과의 전투에서 큰 전과를 올려 석 달 만에 사면, 복직된다. 임진왜란 중에는 왜장 가토 기요마사를 잡으라는 어명을 어겼다는 이유로 1597년 4월1일부터 8월2일까지 백의종군을 한다. 이순신은 원균이 이끈 칠천량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궤멸당하자 삼도수군통제사로 복직해 소임을 다한다. 조선시대 백의나 포의(布衣)는 벼슬이 없는 사람을 뜻했다. 백의종군은 자의에 의한 결정이 아니었다. 조정에서 내리는 처벌 가운데 낮은 단계에 속했다. 무과 과거급제자의 신분은 .. 2012. 11. 26.
[여적]빈사의 꿀벌 김진호 논설위원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 미국 농무부의 통계에 따르면 1980년 450만개였던 양봉농가의 벌통이 2008년 244만개로 줄었다. 2006년 겨울부터 다음해 봄까지 북반부 꿀벌의 4분의 1이 사라졌다.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범 지구적인 현상이다. 일명 군집붕괴현상(CCD). 과학자들이 원인을 찾아 나섰지만 오리무중이다. 2009년 미국 ‘CCD워킹그룹’의 첫 연례보고서는 꿀벌들의 군집붕괴 이유로 각종 병균과 바이러스, 기생충, 진드기, 살충제, 유전자 조작작물, 휴대폰 전자파 등 61가지를 들었다.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결론이다. 의 저자 로완 제이콥슨은 꿀벌들이 수많은 스트레스 탓에 적응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꿀벌들은 몇 주에 한번씩 트럭에 실려 이동하면서 .. 2012. 11. 18.
[여적]티파티 1773년 12월 영국 식민당국의 강탈적 과세에 분노한 보스턴의 ‘자유의 아들들’은 3척의 배에 실려 있던 차(茶)를 바다로 던졌다. 영국이 통치하던 미국 동북부 13개 식민지 주민들의 독립의식을 고취시킨 유명한 티파티(Tea Party) 사건이다. 미국민의 유전자에 납세에 대한 거부감을 새긴 계기가 된 조세저항운동이었다. 먼지 묻은 역사의 한 페이지가 아니다. 많은 미국민들은 여전히 그 시절의 정서와 가치를 품고 있다. 2009년 8월, 미국 전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사활을 걸고 추진한 보건의료 개혁을 반대하는 티파티 운동가들의 시위로 달아올랐다. 보건의료 개혁에 따른 세금 증가와 지극히 사적 영역인 의료서비스 선택에 연방정부가 개입하는 것에 대한 저항감의 표출이었다. 자생적으로 등장한 티파티 운동.. 2012. 11. 8.
[여적]자연재해, 두 개의 시선 김진호 논설위원 자연재해는 국경을 넘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TV와 인터넷 덕분에 외국 피해현장을 실시간으로 보는 시대다. 하지만 자연재해 뉴스는 발생국가에 따라 굴절돼 수용된다. 세계가 미국 동북부 지역에 접근하는 허리케인 샌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지난달 말, 샌디가 이미 할퀴고 지나간 카리브해 국가들은 잊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리브해를 통과하면서 1급 허리케인에서 2급 허리케인으로 위력이 커졌던 샌디는 정작 미국에 상륙하면서 열대성 폭풍으로 규모가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계절성 돌풍과 만조와 겹치면서 샌디는 막대한 피해를 남겼다. 31일(현지시간) 현재 73명의 사망·실종자가 발생했다. 재산피해는 22조원에서 55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그러나 다행히 미국은 발빠르게 정상을 되찾아가고.. 2012. 11. 1.
[여적]프랑켄스톰 김진호 논설위원 복수의 현상이 겹쳐 상상을 초월하는 재난으로 이어지는 것을 두고 ‘퍼펙트 스톰’이라고 한다. 1997년 미국 작가 세바스찬 융거의 작품명에서 유래했다. 융거는 1991년 핼러윈 시즌을 덮친 돌풍이 저기압의 따뜻한 대기·고기압의 찬 대기·허리케인이 몰고 온 적도의 습기 등 세방향의 기상현상이 겹치면서 발생한 사실에 착안했다. 이후 퍼펙트 스톰이라는 단어의 중독성은 오래가고 있다. 특히 2007년 이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동을 계기로 회자되고 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최근 “유로존의 해체 및 미국 경제의 더블딥(이중침체), 중국의 성장둔화 등이 겹쳐 2013년 세계경제가 또 다른 퍼펙트 스톰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러나 정작 단어의 근원이었던 퍼펙트 스톰이 .. 2012. 10.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