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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여적70

이중시민 필자는 태어나 50년이 넘도록 서울 밖에 주민등록지를 둔 적이 없는 서울 시민이다. 함경남도 원산시 용동 35번지를 원적(原籍)으로 두고 있는, 엄연한 원산 시민이기도 하다. 아직 밟아보지도 못한 원산 시민의 정체성이 짙지는 않다. 하지만 ‘동해물과 백두산’을 모두 품은 동북지방 어딘가에 조상의 혼이 깃들어 있다는 의식만은 선명하다. 실향민들은 고향을 잃었지만 서울 북한산 밑에 행정기관을 갖고 있다. 법에 근거해 황해·평남·평북·함남·함북도를 ‘관할’하는 이북5도위원회다. 경기·강원의 미수복지역을 아우르기에 정확하게는 이북 7도에 원적을 둔 사람들이 해당된다. 각각 향토문화가 판이한 7도를 이승만 정부가 1949년 인위적으로 묶어놓은 것은 처음부터 정치적·이념적인 목적에서였다. 통일 이후에 대비한 ‘그림.. 2012. 10. 18.
어느 구청장의 과거 2012.10.13 “손발이 꽁꽁 묶인 채 각목(통나무)에 끼워진 유모씨의 몸은 등이 아래로 처진 채 공중에 매달렸다. 뒤로 젖혀진 얼굴 위로 젖은 손수건이 덮여졌고, 주전자를 들고 있던 (보안사 수사관) 추모씨는 생명을 이어가는 최후의 구멍에 새빨간(고춧가루) 물을 부었다. … 나는 이 광경을 더 이상 쓸 수가 없다….” 재일동포 김병진씨의 책 에 나오는 ‘인간 바비큐 물고문’의 목격담이다. 김씨는 보안사(현 기무사) 통역으로 서울 장지동 분실의 현장에 있었다. 고문 피해자는 간첩으로 몰려 보안사의 서울 장지동 분실에서 불법취조를 받았던 재일동포 유지길씨. 고문관은 당시 수사5계의 추재엽 수사관이다. 공교롭게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22일간 참혹한 고문을 받았던 1.. 2012. 10. 12.
마르크스를 사랑한 남자 김진호 논설위원 “10월 혁명의 꿈은 여전히 내 안의 어딘가에 남아 있다. 내버리고, 거부했건만 사라지지 않았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카를 마르크스 사상이 유용하다고 믿은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85세에 펴낸 자서전 에서 자신의 사상적 정체성이 여전히 옛 소련의 탄생을 가능케 한 10월 혁명에 머물고 있음을 털어놓은 대목이다. 홉스봄이 엊그제 9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투철한 공산주의자이자 탁월한 역사학자로서 이념과 역사를 펜 끝에서 명징하게 정리해온 일생이었다. 네오콘의 바이블이라고 할 미국 위클리스탠더드가 ‘스탈린의 치어리더’라는 꼬리표를 달았듯이 그는 평생 못말리는 급진 공산주의자였다. 사상적 정체성 탓에 불이익도 받았다. 30세이던 1947년 런던대학 버크벡 칼리지의 역사학 강사로 교단에.. 2012. 10. 2.
국화와 칼 오키나와를 처음 방문한 일왕은 현 아키히토이다. 1993년에 이어 패전 50주년인 2년 뒤 오키나와를 찾아 고개를 숙였다. “한번이라도 전과를 올려야 (전후)교섭이 쉽게 풀릴 것”이라는 선왕 히로히토의 교시 탓에 60만 현민이 옥쇄를 강요당했던 오키나와다. 그는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유족들을 위로하면서 평화를 염원했다. 아키히토 일왕의 ‘힐링 행보’는 선왕 사망 석 달 만인 1989년 4월 전쟁 중 중국에 끼친 피해에 대해 유감표명을 하면서 예고됐다. 3년 뒤 베이징을 방문했다. 2001년 12월23일 자신의 생일을 맞아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한·일 갈등에 대한 질문을 받고, 느닷없이 8세기 간무 일왕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거론하며 “한국과의 깊은 인연을 느낀다”고 말해 친근감을 드러냈.. 2012. 9. 21.
기억의 전쟁 1992년부터 4년 가까이 발칸반도의 심장부를 피로 물들인 보스니아 전쟁은 인종과 종교 갈등에 더해 각 계파 지도자들의 정치적 야욕이 빚은 참극이었다. 보스니아계·크로아티아계·세르비아계가 각각 역사 속 증오의 상징을 들고 벌인 ‘기억의 전쟁’이기도 했다. 크로아티아계는 우스타샤의 적·백 체크무늬 깃발을, 세르비아계는 해골 그림에 ‘왕과 조국을 위하여, 자유냐 죽음이냐’라는 문구가 적힌 체트니크 문장(紋章)을 각각 들고 나왔다. 나치즘과 파시즘을 민족주의와 결합시킨 우스타샤는 특히 2차 세계대전 중 최소 30만명의 세르비아계 주민들을 학살했다. 일부 보스니아계 회교도들이 우스타샤의 학살극에 동원됐다. 체트니크는 1940년대 테러와 인종청소를 통해 크로아티아계·보스니아계를 몰아내려 했던 세르비아 극우 민족주.. 2012. 9. 18.
역사와 정치 미국 상원이 올해까지 150년 동안 한 해도 빼놓지 않고 해온 행사가 있다. 조지 워싱턴의 생일인 2월22일에 즈음해 그의 1796년 고별연설문을 읽는 행사이다. 7641개 단어로 된 ‘벗들과 동포 시민들에게’라는 제목의 연설문을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은 줄잡아 45분. 민주·공화 양당 의원들이 갈마들며 읽는다. 연례낭독이 시작된 것은 남북전쟁의 끝이 보이지 않던 1862년부터다. 누란의 위기에 처해 지역 분리와 정파 싸움 및 외세 간섭이 공화국의 안정을 위협한다는 워싱턴의 경고를 되새김질하기 시작한 것이다. 독회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지금 여기’의 정치인으로 돌아와 이전투구를 벌일지언정 근원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일회성 행사만이 아니다. 특히 역사적 인물들은 미국 연방의사당의 일상적인 토론에 .. 2012. 9. 16.
클린턴의 애드리브 정치인이 풍기는 매력은 의외로 작은 데서 비롯된다. 짧은 순간 상대방의 눈빛을 읽고 능청스레 악수를 청하는 순발력도 그 중 하나다. 특파원 시절 워싱턴 매사추세츠가에서 빌 클린턴과 조우한 것은 2009년 초가을쯤이다. 분홍색 티셔츠에 흰 반바지 차림으로 누군가와 서서 통화를 하는 중이었다. 코러스 하우스에서 나오는 길에 느닷없이 그와 눈이 마주치자 당황스러웠다. 직업적 본능에서 카메라는 챙겼는지, 짧게라도 인터뷰를 한다면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하는 단상들이 머리를 스쳤다. 순간, 어쩔 줄 몰라하는 눈빛을 간파했는지 클린턴은 활짝 웃으면서 악수를 청했다. 그의 손에는 블랙베리가 들린 채였다. “만나서 반갑…” “하이” 정도의 짧은 대화가 오갔을까. 그는 곧 길가의 검은색 미니밴에 올랐고, 그제서야 둘러보.. 2012. 9.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