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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ees87

북한자료센터 정광채 사서관 “탁 트인 북한도서관은 언제쯤…” | 기사입력 2003-04-24 09:42 | 최종수정 2003-04-24 09:42 광화문우체국 6층에 자리잡은 북한자료센터에 가면 ‘욕쟁이 아저씨’가 있다. 통일부 직원이면서 북한자료센터의 터주대감인 정광채 사서관(60). 북한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문서나 책자를 마치 바이러스처럼 여기던 시절부터 28년 동안 ‘불온자료’를 취급해왔다. 북한 또는 통일문제 전문가 가운데 그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지만 철저히 무대 뒤편에만 머물러왔다. 오는 6월 정년퇴임을 맞는 그는 남북관계 변천사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책을 통제하는 건 야만스러운 짓 통제된 자료와 함께 청춘을 보낸 그가 입이 걸은 건 어찌보면 자연스런 귀결인지도 모른다. 과거 공개할 수 없는 북한자.. 2012. 2. 23.
진 핼로랜 미국 소비자연맹 국장 “한국 소비자 분노 당연 20개월 미만 꼭 관철을” | 기사입력 2008-05-16 02:46 | 최종수정 2008-05-16 03:52 ㆍ진 핼로랜 美소비자연맹 국장 미국산 쇠고기 수입 확대에 대한 한국의 국민적 저항은 미 소비자단체에도 관심의 대상이다. 1990년대 미국산 유전자 조작(GM) 식품에 대한 격렬한 저항에 이어 미국산 먹거리가 해외 소비자로부터 거부된 대표적 사례이기 때문이다. 진 핼로랜 미 소비자연맹(CU) 식품정책 담당 국장은 14일(현지시간) “미국쇠고기의 광우병 대책은 허술한 상태”라면서 “한국인들이 왜 시위에 나서는지 이해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식품 안전을 자유무역협정(FTA)의 이익을 위해 희생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20.. 2012. 2. 23.
윤현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 초고에 비해 분량이 많이 줄었다. 담배를 즐기시고, 점심 식사 때는 막걸리 한통을 종종 반주르 즐기시는 분이다. 북한인권 문제를 가장 차분하고 조용하면서도 실질적으로 풀어나가시는 분이다. “北인권 정치적 접근 안돼” | 기사입력 2004-03-16 18:59 | 최종수정 2004-03-16 18:59 서울 독립문 인근 심지빌딩 4층 북한인권시민연합 교육관 칠판 옆에는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다. 북한 인권개선과 탈북자교육 등의 활동을 하는 이 단체 윤현 이사장(74)이 정신적 지표로 삼고 있는 인물이다. 1970년대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한국지부를 창설한 뒤 인권운동에 헌신해 온 윤이사장의 역정은 하벨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현실정치에 몸을 담지 않았다는 점이다... 2012. 2. 23.
마이크 허커비 2008년 미국 대선 공화당 예비후보 아이오와 코커스에 참가한 허커비가 한 호텔에서 지지하는 블로거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개신교 목사 출신인 그의 선거운동원들 중에도 목사들이 많았다. 선량한 인상의 미국인이지만, DMZ라는 단어가 생각안나서 '국경(border)'라고 답했다. 그 뿐 아니라 미국의 많은 정치인들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이해가 얕다. 한국을 방문한 길에 (북한과의) '국경'을 방문한 적이 있다. 북한 핵위협에 맞서 군사적 방어태세를 단단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는 1일 기자와 만나 한국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2008년 미국 대선의 첫 관문인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를 이틀 앞두고 이날 주도 디모인 중심가에서 열.. 2012. 2. 23.
에드윈 플레넬 르몽드 편집국장-독립언론 신문사 편집국장이 바쁘기는 프랑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 인터뷰를 위해 그의 비서와 주고받은 전화와 팩스만 30여회가 된다. 편집국장은 육체적 정신적 격무에 시달려야하는 자리다. 해서 취임 1~2년만 되도 지치기 쉽다. 플레넬은 그러나 1996년부터 2010년까지 8년간 살인적인 격무를 견뎠다. 2009년에는 메디시 문학상 수필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상하게 당시 르몽드 사진기자가 보내준 멋진 인터뷰 사진을 찾을 수 없다. “정론은 모든 권력으로부터의 자유” -‘르몽드’플레넬 편집국장 인터뷰- 경향신문이 창간되기 2년 전인 1944년 지구 반대편의 프랑스 파리에서는 ‘관제 신문’이 하나 탄생했다. 드골 장군이 창간을 주도한 르몽드(Le Monde)였다. 그러나 르몽드는 곧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 2012. 2. 23.
'프랑스적 르네상스인' 자크 아탈리-세계화 전화선을 통해 만난 그는 의외로 성질이 무척 급했다. '프랑스적 가치'에 대한 약간의 비판적 시각조차 견디지 못했다. 말투도 빨랐다. 아탈리는 사회당 출신 프랑수아 미테랑 정부에서 경제자문을 했지만 우파의 니콜라 사르코지 정부에도 자문을 하는 등 좌우를 넘나드는 지식인이다. "프랑스는 세계화의 변방이 아니라 미국과 함께 세계화의 주도국가"라고 말했던 그가 최근 프랑스와 미국이 잇달아 국가신용등급이 강등된 지금, 뭐라고 말할 지 궁금하다. [세계 석학에 듣는다] 프랑스 대표지성 자크 아탈리 | 기사입력 2006-04-19 21:00 | 최종수정 2006-04-19 21:00 두 달여 동안 프랑스 전국을 혼란 속에 몰아넣었던 반 최초고용계약(CPE) 시위는 우파정부의 법안 폐기로 사실상 종료됐다. 하지만 실.. 2012. 2. 23.
장-마리 뱅상 파리 8대학 교수-9.11테러 파리대학 유학시절 지도교수님이기도 하신 분이다. 영화배우 뺨치는 수려한 용모에 프랑스의 대표적인 정치사회학자이지만, 늘 청바지에 셔츠 차림으로 학교에 나오셨다. 진정한 석학이시다. 자신과 비슷한 연령대의 프랑크푸르트학파를 전공하셨고 말년에는 피에르 브르디외와 위르겐 하버마스 사회학을 비교연구하셨다. 하버마스가 파리를 방문했을 때 당시 사회당 출신 리오넬 조스팽 총리가 하버마스에게 만나달라고 청했는데, 하버마스가 "친구를 만나기로 해서 안된다"며 거절한 적이 있는데 바로 뱅상 선생이 그 친구였다. 술을 드시면 말술이고 8대학 근처 몬테네그로 음식점을 좋아하셨다. 안타깝게 몇해전 수술을 받던 도중 돌아가셨다. [석학과의 대화]佛 정치사회학자 장 마리 뱅상 지난 11일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국방부.. 2012. 2. 23.
백낙청 선생-한반도 통일문제 경향신문이 2~3년 끌고 갔던 인터뷰으 첫회분이다. 백선생의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용산역에서 광주까지 KTX열차를 함께 타고 가면서 인터뷰를 했다. 출발전 용산역에서 찍은 사진 뒤편으로 보이는 철로가 남과 북처럼 평행선을 긋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광주역에 내려 허겁지겁 마감시간을 마췄던 기억이 새롭다. [경향과의 만남] 백낙청 “통일 노력없는 평화 주장은 공허” | 기사입력 2006-06-21 16:48 | 최종수정 2006-06-21 16:48 12일 서울 용산역 광주행 KTX플랫폼에 선 백낙청 교수. 강윤중 기자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12일 오전 서둘러 서울 용산역에서 KTX 열차에 올랐다. 광주에서 6·15 남북공동선언 6주년 기념 민족통일대축전 행사가 열리기 때문이다. 요즘 그는 6·15.. 2012. 2. 23.
'거리의 사회학자' 마페졸리 파리5대학 교수 내가 했던 대면 인터뷰중 유일하게 취중 인터뷰다. 프랑스 문화원에서 종로3가 포장마차로 옮겨서 소주 한잔을 나누면서 이야기를 이었다. 낯선 음식에 모험심이 있는 프랑스 사람 답게 포장마차의 안주들을 무척 즐겼다. “문화 단절이 佛 학생시위 불렀다” | 기사입력 2006-04-03 20:39 | 최종수정 2006-04-03 20:39 프랑스 지식인들만큼 좌파와 우파의 경계가 뚜렷한 경우는 드물다. 좌·우파는 다시 트로츠키파와 극우파 등으로 세분화되면서 다양한 이념의 스펙트럼으로 나뉜다. 하지만 26세 미만 청년들에 대한 취업 2년 내 해고를 자유화한 프랑스 정부의 ‘최초고용계약(CPE)법’ 반대 시위가 절정을 이뤘던 지난주 방한한 미셸 마페졸리 파리5대학 교수(사회학)는 달랐다. 좌와 우의 양분은 지난 .. 2012. 2. 23.
백낙청 선생-6.15 5주년 백선생은 인터뷰를 통해 당시 이인호 서울대 교수를 중심으로 북한의 인권실태를 비판한데 대한 자신의 견해를 내놓았다. 북한 인권 문제를 보편성과 특수성의 차원에서 접근할 문제라는 게 백선생의 지론이다. “北인권 정략적 압박은 주민생존권 위협” | 기사입력 2005-12-22 18:36 | 최종수정 2005-12-22 18:36 백낙청 남측 6·15민족공동위 상임대표가 지난 15일 올 한해의 남북 민간교류 전반에 대해 회고하고 있다.6·15남북공동선언 5주년과 해방 60돌이 겹친 올해는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사건들이 많았다. 그리고 남북은 함께 어우러져 파격의 새 역사를 썼다. 지난 3월 금강산에서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남북해외공동행사준비위(공준위)’가 발족한 데 이어 6·15 기념행사를 평양에서, .. 2012. 2. 23.
존 아이켄베리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정치학)-오바마 외교정책(2008) 한반도(2006) 존은 천재성이 번득이는 정치학자로 한반도 문제에도 깊은 식견을 갖고 있다. 최고 엘리트 코스를 밟았지만 입성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소탈한 성품이다. 이때만해도 오바마의 외교정책에 대한 기대가 높았지만 정작 존이 말했던 Consensus Builder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것 같지는 않다. “공감대 리더십…부의 분배·사회적 보호 힘쓸듯” | 기사입력 2008-11-06 03:00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 캠프의 외교안보 정책 자문역을 맡고 있는 존 아이켄베리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4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과의 협력관계를 최우선 순위로 둘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ㆍ오바마 당선자 외교안보정책 자문역 아이켄베리 교수 존 아이켄베리 미 프린스턴대 교수(53)는.. 2012. 2. 23.
링컨 블룸필드 전 미국 국무부 차관보 워싱턴 특파원 발령을 받고 한달남짓 지났을 때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했다. 한국 신문들은 논조에 따라 구미에 맞는 사람만을 인터뷰하는 경향이 있다. 외교안보 기자와 씨름 선수는 균형감각이 생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해서 각기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두사람의 인터뷰를 함께 추진했다. 링컨은 아버지도 국무부 차관보를 역임했다. 흥미로운 것은 아버지는 민주당이었지만 링컨은 공화당이라는 점이다. 한국도 종종 방문하는 지한파로 워싱턴 특파원 시절 종종 식사를 나누던 사이다. 특파원 부임 기념으로 Dupont Circle에 있는 Front Page레스토랑에서 워싱턴 지역의 특산물인 Crab cake를 사주었던 기억이 난다. 사진은 좀 사납게 나왔지만 만나보면 전직 고위 공무원이라기 보다는 의지할만한 형님같은 인상이.. 2012. 2. 23.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2009, 2008, 2006 북한 2차 핵실험 / 스트라우브 전 美국무부 한국과장“미, 핵보유국 인정 결코 안해” [경향신문]|2009-05-26|04면 |10판 |종합 |인터뷰 |1179자 북한의 2차 핵실험을 바라보는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의 시각은 1차 때와 달리 비교적 차분하다고 데이비드 스트라우브 미 스탠퍼드대 아·태연구소 부소장(사진)이 말했다. 국무부 한국과장과 일본과장을 지낸 그는 24일(현지시간) 경향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언젠가 북한과 대화를 하겠지만,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거나 북한이 원하는 군축회담에 동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북한이 예상보다 빨리 2차 핵실험을 했다. 어떤 여파가 예상되는가. “북한은 김정일의 건강상태 때문에 후계자를 정하기 전에 핵실.. 2012. 2. 23.
미첼 리스 미국 워싱턴대학 학장(2009, 2010) 리스는 2010년 두번째로 인터뷰를 한 지 1년쯤 지나 매릴랜드주 소재 워싱턴대학 학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012년 미국대선에서 공화당의 유력한 후보로 나선 미트 롬니의 선거캠프에 합류해 외교안보정책을 자문하고 있다.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부 정책실장을 맡는 등 전형적인 공화당 성향의 보수인사이지만. 합리적인 보수로 꼽힌다. 한반도 문제의 평화로운 해법에 대한 그의 견해는 스티븐 보즈워스를 비롯한 민주당 성향 인사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북아일랜드 분쟁 조정에 관여했으며 이에 대한 책도 남겼다. [오바마 취임1년](3) 대북정책과 북핵의 현주소 워싱턴 | 김진호 특파원 입력 : 2010-01-19 18:11:08ㅣ수정 : 2010-01-20 09:55:09 ㆍ“관련국과 협력 인상적, 본격 해결 노력.. 2012. 2. 23.
하워드 진 생애 마지막 인터뷰 인터뷰를 하고 한달 남짓 됐을때 하워드 진 선생이 돌아가셨다. 마지막 언론인터뷰가 된 셈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수영을 하시다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것으로 기억된다. 전화선 너머로 들리던 그분의 또랑또랑하고 맑은 목소리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하워드 진 “강렬한 시민운동만이 역사와 사회를 바꾼다” ㆍ미국 원로 사학자 하워드 진 인터뷰 미국의 원로 사학자인 하워드 진(87)은 미국의 양심을 대표하는 실천적 지식인이다. 유대인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일생을 반전과 노동운동에 바치고 있다. 정작 그의 삶을 관통하는 반전·민권 사상은 미국 주류 학계·언론계로부터 외면당했고, 진보진영조차 과격하다는 평가를 내릴 정도다. 그런 그가 경제위기로 고단해진 미국민들의 안방 속으로 파고.. 2012. 2. 23.